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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에 잠긴 춘천의 역사죠”⋯20대 청년이 소양강댐 수몰민을 기록하는 이유

준공 당시 ‘동양 최대 사력댐’ 타이틀 댐 건설로 2만명 가까운 수몰민 발생 수몰 이야기 기록하는 아카이브 활동 댐 건설이 바꾼 개인 삶의 양식에 주목

2024-07-07     권소담 기자

국내 최대 다목적댐 ‘소양강댐’은 2023년 준공 50년을 맞았다. (사진=MS TODAY DB)

‘호반의 도시’ 춘천을 상징하는 국내 최대 다목적댐 소양강댐은 지난해 준공 50년을 맞았다. 건설 당시 소양강댐에 붙었던 ‘동양 최대의 사력댐’, ‘한강의 기적 발원지’ 등 온갖 수식어에는, 온 나라가 산업화를 향해 달려가던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깃들어 있었다.

댐 준공 이후 반세기, 이런 역사 속에서 소양강댐의 존재로 인해 뒤바뀐 춘천 주민들의 삶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제대로 된 보상 없이 삶의 터전을 빼앗기며 가난으로 내몰렸던 화전민이나, 수몰 이후 아예 춘천을 떠나버린 이주민의 사연은 점차 희미해져 갔다. 지자체가 주도해 수몰민의 이야기를 기록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마을이나 학교 등 단체를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주민 한 명 한 명의 기억을 후대에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소양강댐의 역사에 가려진 수몰민의 삶은 누구에게 들어야할까. 춘천을 떠났다 다시 돌아온 청년 최상희(29) 씨가 최근 그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최씨의 어머니는 소양강댐을 삶의 터전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자신의 나이보다 20년도 더 된 소양강댐이지만, 어머니 옆에서 그 어떤 사람보다 댐의 역사를 듣고 들었다.

그런 그가 지난해 11월부터 일생의 숙제였던 ‘소양강댐 수몰민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역의 이야기와 소외된 이웃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김새하(20, 한림대 철학과) 씨, 심정현(20, 강원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씨와 함께 ‘팀 록필’을 결성해 올해 3월부터 본격적인 수몰민 인터뷰에 나섰다.

 

이달 4일 춘천 커먼즈필드에서 만난 팀 록필 3인방. 왼쪽부터 최상희(29), 김새하(20), 심정현(20) 씨. (사진=권소담 기자) 

편의상 최상희 씨가 록필의 대표를 맡고 있지만, 세 사람은 서로 ‘OO님’ 호칭을 사용하며, 서로를 존중한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고 고민하며 프로젝트를 만들어가고 있다. 상희씨가 주로 인터뷰를 이끌고, 새하씨는 운전과 디자인, 정현씨는 사진을 담당하며 인터뷰이를 만난다.

▶사람들의 이야기로 새로 채우는 소양강댐

프로젝트팀의 이름인 록필(rockfill)은 암석(rock)과 채우다(fill)를 조합한 영어 단어로 사력댐을 의미한다. 소양강댐은 처음엔 콘크리트댐으로 계획됐지만, 설계 단계에서부터 자재 수송과 비용 문제에 부딪혔다. 결국, 인근에서 쉽게 자재 조달이 가능한 사력댐(댐 본체의 주재료를 암석으로 만들어 구조적 안정을 꾀하는 방식)이 채택됐다. 냉전 시대, 돌과 자갈로 내부를 채운 사력댐은 북한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점이 고려됐다고 한다.

그 결과 인근 신북읍 지역에서 채굴한 돌이 소양강댐을 채우게 됐고, 1만8000명에 달하는 수몰민의 그림자는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록필은 고향을 떠나게 된 수몰민을 대신해, 댐 안에 박혀 있는 자갈을 의미한다. 그 자리에 남아있는 돌처럼, 수몰민의 이야기를 가득 채워나가겠다는 팀의 깊은 의지가 담겼다.

록필은 소양강댐이 바꿔 놓은 춘천지역 삶의 양식에 주목한다. 국가적 계획에 의해 삶의 공간을 옮긴 사람뿐 아니라, 직접적인 수몰 피해를 겪진 않았더라도 소양강댐으로 인해 변화한 도시 모습을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찾아간다.

 

춘천 소양강댐 건설로 수몰됐던 지역의 옛 모습. (사진=MS TODAY DB)

이번 프로젝트의 첫 인터뷰이이자, 상희 씨의 어머니인 문종숙 씨가 딱 맞는 사례다. 종숙 씨가 8살 되던 해 소양강댐이 완공됐고, 그의 친정은 댐이 훤히 내다보이는 청평리에 자리 잡았다. 상희 씨는 외갓집을 오가며 소양강댐에 얽힌 기억의 파편을 주워들었지만, 어머니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세세히 알지 못했다.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비로소 상희 씨는 자신의 뿌리가 소양강댐과 어떤 역사를 함께 해왔는지 알게 됐다.

그동안 지자체 등에서 주도했던 수몰 관련 전시와는 다르다. 팀 록필은 주민 개개인의 경험을 통해 ‘수몰 이후의 삶’에 중점을 두고 춘천을 돌아보자는 취지로 아카이브를 진행하고 있다. 록필만의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개인에 집중한 미시 연구 방식을 통해 50년 전 시대상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상희 씨는 “그동안 공공기관에서 인류학적, 기술사적 맥락으로 소양강댐과 수몰민의 이야기를 연구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국가 권력으로 인해 개인의 삶을 희생당한 피해자들을 공공의 영역에서 다루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다른 지역 댐과 비교해 소양강댐은 규모 면에서 매우 컸고 피해자도 많았는데, 점점 연로해지는 수몰 당사자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많은 이야기를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소외된 이야기를 엮는 작업의 중요성

심정현 씨는 그동안 가시화되지 않았던 여성 수몰민의 이야기에 집중하려 한다. 정현씨는 “그동안의 수몰 관련 콘텐츠는 대부분 남성 중심의 인터뷰였다”며 “결혼을 계기로 마을을 떠났지만, 소양강댐이 생기기 전에 대한 기억을 가진 여성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새하씨는 수몰민과 관련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있다. 수몰민 관련 전시를 추진했던 기획자나, 생업을 찾아 춘천 밖으로 이주한 이들을 조명할 계획이다. 소양강댐 일대의 열악한 교통 인프라 속에서 고령의 어르신들을 위해 왕진을 다니는 호호방문진료센터의 구성원도 인터뷰 대상이다.

 

팀 록필의 수몰민 인터뷰. 상희 씨와 새하 씨가 인터뷰이와 이야기를 나눌 동안 정현 씨가 기록한 현장의 순간이다. (사진=록필 제공) 

평창 출신인 정현 씨와 새하 씨는 대학 진학을 계기로 3년째 춘천에서 지내고 있지만, 록필에 참여하기 전까지 춘천에 수몰민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록필은 이번 프로젝트가 지역에 터전을 두고 살아가는 청년층에게도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상희 씨는 “외지에서 춘천으로 진학한 대학생들이, 강원지역의 열악한 교통 인프라에 주목해 노인 건강을 관리하기 위한 디지털 헬스케어 창업에 나서는 경우가 많지만, ‘수몰’이라는 지역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경우도 많다”며 “소양강댐 수몰에 대해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게 되면 교통이나 의료 등 인프라에 대한 논의도 확장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팀 록필의 최종 목표는 책 출간이다. 내년 상반기까지 10명 이상의 수몰민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책으로 엮어 출판할 계획이다. 내밀한 개인 이야기가 수반되는 아카이브 작업인 만큼 인터뷰이를 수차례 만나 마음을 교류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프로젝트의 취지에 공감한 춘천문화재단으로부터 ‘일당백 리턴즈’ 사업을 통해 100만원의 활동비를 지원받기도 했다.

최상희 씨는 “그동안 가시화되지 않았던 수몰민들의 이야기를 엮어 ‘여기에도 사람이 산다’는 사실을 알리고, 지역의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그 과정에서 세대 간 소통이나 공공재에 대한 시민들의 상상력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소담 기자 ksodamk@mstoday.shubhangiagrawal.com

(확인=김성권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