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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생들의 ‘탈(脫)춘천 러시’⋯강원 일자리 공무원밖에 없다

[사라지는 청년들] 일자리 때문에 춘천 등진다 강원대 졸업생 52%, 수도권에서 일자리 구해 지역 초중고 나온 토박이도 일자리 찾아 상경 ′산업 다양성·안정적 직장′ 부족에 러시 불가피 산업 체질 개선·금전 지원 활성화 등 해결 거론

2024-08-16     최민준 기자

춘천에서 대학을 나온 조효준(28·원주)씨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졸업과 함께 서울행을 택했다. 스포츠 관련 기업에 취직하는 게 목표였던 조씨에게 고향은 황무지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원하는 일자리가 없어 서울로 갈 수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이 물가가 높아 당장 어려움을 겪을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경력을 이어갈 기회가 훨씬 많다고 생각했다”고 상경의 이유를 밝혔다.

지역사회는 지속적인 청년 유출로 활기를 잃고 있다. 강원지역에서 초중고, 대학까지 나온 ‘토박이’ 마저 대학 졸업과 함께 서울행에 나서고 있다. 청년들은 고질적인 일자리 부족을 호소한다.

▶ 대학 졸업하면 곧장 ‘수도권’행

강원대에 따르면 2022년 졸업 후 취업에 성공한 2097명 가운데 724명(35%)이 서울에 있는 직장을 선택했다. 경기(19%)·인천(3%) 등 수도권으로 범위를 넓히면 비율은 57%까지 늘어난다. 반면 강원에 남은 이들은 30%였다.

수도권 출신 학생들이 다시 고향으로 복귀한 수치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본지가 ‘대학알리미’에 공시된 자료를 종합한 결과, 올해 강원대 신입생 가운데 19%는 서울 소재 고등학교 출신이다. 서울에서 유입된 입학생 보다 취업을 위해 서울로 나간 졸업생 비율이 오히려 두 배 가까이 높다. 한림대의 경우 졸업생들의 취업 지역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통상 강원대와 비슷한 수도권 유출 현상을 보이고 있다. 

강원대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정명훈(27)씨는 “주변 친구들의 희망 직장은 하나 같이 수도권”이라며 “청년들이 희망하는 기업이 그곳에 몰려있으니 그런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춘천의 한 대학교. 학생들이 캠퍼스를 거닐고 있다. (사진=MS TODAY DB)

▶지역 사회에서 사라지는 청년들

지자체 역시 청년 유출 문제로 신음하고 있다. 춘천 전체 인구가 몇 년 사이 우상향을 유지했음에도 청년층은 오히려 줄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강원본부가 지난 2월 발표한 ‘강원지역 청년 유출 대응방안’을 보면 강원 청년 인구는 매년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강원 청년 인구는 2018년 7760명이 줄어든 이후 2022년 1500명 수준으로 감소 폭이 줄었다. 하지만 지난해 3950명이 지역을 빠져나가 또다시 유출 규모가 커졌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통계청 기준 올 1·2분기 강원지역은 20대 청년 2373명이 빠져나갔다. 

춘천의 경우 20대 전체의 유입은 늘었지만 취업 시장에 뛰어드는 만 25~29세 연령대 청년들의 유출이 눈에 띈다. 올해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통계 기준 25~29세 인구는 1월 1만8815명에서 7월 1만8714명으로 6개월 만에 101명이 감소했다. 반대로 같은 기간 28만6168명이던 시 인구는 28만6331명으로 163명 늘었다.

청년 인구 유출은 지역 내 일자리가 늘어났지만, 이들을 붙잡기엔 역부족인 게 문제다. 통계청에 의하면 춘천 내 각 분야 사업체 수는 2017년 1만8608개에서 2022년 2만1389개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50명 이상이 종사하는 업체도 115개에서 291개로 급증했다. 

그러나 이런 증가조차 소기업들이 대부분이어서 지역 청년 고용 증가엔 사실상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분석이다. 해당 업체들이 밝힌 신입 직원 채용 규모는 평균 3.0명에 불과했다. 사업체가 3000여개 적었던 2017년(3.2명)보다도 오히려 감소한 수치다. 특히 1~4명을 채용한 업체가 88.5%인 반면 10~20명 이상 대규모 채용을 실시한 업체는 4.6%에 그쳤다.

일자리 수 증가는 오히려 아르바이트 형태의 임시근로만 늘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원통계지청에 따르면 지난해 강원지역 취업자 중 임시근로자(1개월 이상 1년 미만 고용계약) 수는 14만3000여명에서 15만7000여명으로 1만5000여명 늘어났다. 같은 기간 1년 이상 고용 계약한 정규직 등 상용근로자 수는 8000명으로 임시근로자의 절반에 그쳤다.

좁은 지역 채용 시장에 청년들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춘천시가 지난해 조사한 ‘일자리 충분도 조사’에 따르면 20~29세 시민 열 중 일곱이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 2023년 하반기 춘천 전체 고용률이 67.9%였던 반면 청년 고용률은 45.5%에 그치기도 했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춘천시 전체 인구는 증가한 반면 25~29세 인구는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일자리 적고, 수입 낮고, 안정성 떨어지는 청년 취업 ′3대 악재′

결국 지역에 남는 청년들은 공무원 뿐이었다. 청년들이 공무원을 선택한 비율은 전국 최고 수준이다. 본지가 통계청과 행안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기준 강원지역 20대 근로자 9만2000명 가운데 공무원은 3069명으로 전체의 3.3%였다. 이는 전남(4.7%)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비율이다. 반면 서울 20대의 공무원 비율은 0.9%다. 전국 평균도 1.5%에 불과했다. 

춘천을 비롯한 강원이 ′공무원 사회′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청소재지인 춘천만 놓고 봐도 이달 기준 시청 공무원 정원은 1850명, 도청은 7047명(소방직 포함)으로 총 규모(8897명)가 춘천시내 근로소득자(11만1592명)의 8%에 달한다. 각종 산하기관까지 합하면 거의 열중 하나꼴로 비율은 더 늘어난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청년들은 지역 일자리가 매우 한정적이고 수입도 적고, 직업의 안정성도 떨어지는 3대 악재에 좌절한다. 2년 전 한림대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최유담(27)씨는 집 마련 등 경제적 이점을 고려해 지역에 남고 싶었으나 원하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최씨는 “강원도에선 자영업이나 관광업, 공무원이 아니면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며 “지역 경제가 자체적으로 활성화하지 못하고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수도권보다 턱없이 낮은 임금도 청년들을 붙잡지 못하는 원인이다. 국세청 ′근로소득 연말정산 신고현황′을 보면 춘천에 주소지를 두고 근로소득에 대해 세금을 내는 근로자는 2022년 기준 11만1592명으로, 평균 연봉은 3737만원이었다. 서울 근로자들의 평균 연봉(4937만원)에 비해 매우 적은 수준이다. 전국 평균(4233만원)보다도 낮다. 

또 다른 졸업생 이현주씨(26)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는 다양한 활동이나 전문 학원들이 풍부해 취업이나 이직을 준비하는 게 지역보다 훨씬 쉽다”며 “물가는 높지만, 연봉 수준도 지역에 비해 더 높다”고 지역을 떠난 이유를 밝혔다.

청년들에게 첨단산업 등 안정적인 소득을 제공하는 좋은 일자리를 마련하는 것 역시 시급한 과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 발표한 ′청년층의 지역 전입에 미치는 영향 연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강원에서 첨단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2.2%로 전국 꼴찌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은 19.9%였다. 
 

지역 청년들은 서울행을 택하는 이유로 직업 다양성·연봉·안정성 등을 언급했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청년 스스로 남고 싶게 만들어야″

전문가들은 지역 산업의 체질 개선, 기업 유치와 동시에 산·학·관 연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원창 대학교육협의회 정책연구팀 선임연구원은 ″공공기관 이전과 함께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추가로 확보해 국내 핵심 산업이 지역에서 개발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며 ″일본과 대만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해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지역마다 개별적인 산업군을 형성하고 지자체와 대학이 지역 특화형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창업이 지역 청년들의 해답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종필 한국은행 강원본부 기획금융팀장은 ″당장 지역 산업의 체질 개선이 어렵다면 지역 대학과 지자체가 연계해 스타트업 인력을 양성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취업은 물론 창업에 도전하는 청년들이 금전적 메리트를 갖고 지역에 남을 수 있도록 국가와 지자체 차원의 세제 혜택과 경제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박 팀장의 분석처럼 강원지역 대학 졸업생들의 창업은 비교적 활발한 편이다. 본지가 대학알리미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2년 기준 강원권 대학 졸업생 가운데 1인 창업자 비율은 1.23%로, 서울(0.89%)과 경기(1.05%)를 모두 앞질렀다. 

취업부터 창업까지 다양한 인재 육성과 정착을 위한 고도화된 훈련도 필요하다. 오윤정 강원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존 직업훈련 제도를 다시 검토해 시의성 떨어지는 직업훈련을 과감히 개편해야 한다”며 “청년층 내부 차이와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해 취업부터 이직, 퇴사, 창업 등 여러 고비에 대한 진로 상담을 진행하는 게 해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민준 기자 chmj0317@mstoday.shubhangiagrawal.com

(확인=윤수용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