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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대 병원 앞 여섯 갈래 교차로⋯점멸신호등 의존 1만명 ‘아찔한 통행’

[교통체증 해소 vs 보행자 안전] ‘기형적 도로구조’ 해결법 없나 -학생·직원 7000명, 환자 3000명, 중고생 1100명 -한림대병원·강원대병원 기형도로구조 교통혼잡 -대책 없는 도로 시스템, 공격적인 행정 나서야 -전문가 “전문기관에 자문 요청, 적극성 필요”

2024-08-22     오현경 기자
한림대학교춘천성심병원 앞 교차로는 병원, 응급실, 학교, 주택가 방향에 따라 총 여섯 갈래 길로 나뉘어 차량 정체가 심한 구역으로 꼽힌다. (그래픽=이정욱 기자)

#지난 19일 오후 6시 30분쯤 강원대학교병원 앞 교차로. 횡단보도의 신호등에 초록 불이 켜지자 보행자들이 일제히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평소 강원대학교병원 인근으로 출퇴근한다는 강모(26)씨는 “신호등이 켜지기 전엔 사방에서 차들이 몰려와서 길을 건널 때마다 두려웠는데, 이제는 마음이 놓인다”고 만족해했다. 도로 양방향에서 차가 갑자기 들이닥치진 않을까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이었다. 반면 ‘교통체증이 심해질 것이 뻔한 도로에서 무리하게 신호등을 설치했다’는 운전자들의 볼멘소리도 빗발친다.

최근 국민신문고로 이런 신고가 수차례 접수됐다. 실제로 신호기가 정상 작동된 후 이튿날부터 병원 앞 도로에서도 극심한 교통체증이 이어졌다. 운전자 박모씨는 “항상 지나던 길인데 신호기가 켜진 후 도로가 꽉 막혀 더 복잡한 것 같다”며 “뻔히 예상되던 일인데 굳이 점멸신호를 바꾼 이유가 궁금하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점멸등은 보행자에게 신호등 없는 도로를 건너라는 신호다. 운전자에게는 다른 교통수단이나 보행자를 주의하면서 서서히 차를 운행하라는 지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운전자와 보행자의 태도가 상반된다. 운전자들은 ‘차가 우선’이라며 보행자가 차를 피해 가라고 요구한다. 보행자들은 ‘사람이 우선’이니 차가 사람을 피해 천천히 운전해 주기를 기대한다. ‘보행자 안전 우선이냐’, ‘교통체증 해소 우선이냐’를 놓고 논란이 여전한 이유다. 이런 엇갈린 기대감으로 차량과 보행자가 뒤섞이는 바람에 도로마다 사고가 잦고 혼란이 벌어지기 일쑤다. 춘천에서는 이런 마의 교통 구간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곳이 △강원대병원 앞 △한림대병원 앞 △옛 춘천여고 앞 등이다.

 

지난 8일 강원대학교병원 앞 도로에 교통체증이 심화하면서 차량 흐름이 끊겨 출차를 못한 차들이 병원 안으로 길게 늘어섰다. (사진=독자 제공)

▶ 교통 체증보다는 보행자 안전 우선

지난 10여년간 점멸등이었던 강원대학교병원 앞 신호등이 지난 7일부터 정상 신호등으로 바뀌었다. 올해 6·7월에 춘천 동면의 한 아파트 앞과 퇴계동의 한 꽃집 앞 신호등 없이 운영되던 횡단보도에서 각각 보행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강원대병원 앞 교차로에서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3년 사이에만 보행자 교통사고가 19건에 달해 점멸등 신호등 개선이 요구되는 지점이었다.

이에 따라 경찰과 도로교통공단 등이 지난달부터 합동 조사와 주민 설명회를 통해 개선책을 내놓은 것이다. 실제 전문가들은 도심에서 차로 인한 보행자 사고가 차의 추돌이나 충돌사고보다 사망 위험률이 높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 열 중 셋(2551명 중 885명)은 보행 중 사고를 당했다. 또 어린이 사망자는 더 심하다. 열중 여덟이 보행 중이었다. 강원대학교병원 앞은 위치 특성상 보행에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의 통행이 잦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곳이다.

전문가들은 신호등 정상가동 이외의 추가 개선책인 ‘+α’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주변에 있는 연속 세 개의 신호등이 서로 엇갈린 신호를 보내면 교통체증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체계적인 신호기 전면 개선이 필요한 이유다. 또 신호등이 정상운영되면서 병원의 출입 차단기에서 응급의료센터, 주차장, 장례식장까지 병원 내부도로는 차량으로 더 혼잡해졌다. 주차요금을 결제하는 차량이 몰려 지체하는 차량이 늘면서 운전자들의 불만도 증폭되고있다. 결국 병원의 특성에 맞춰 진출입로나 요금정산소 위치의 재조정도 손봐야야 한다.

경찰은 “교차로 신호등 정상운영으로 도화골 사거리에서 팔호광장까지 차량흐름은 몰라보게 개선됐다”며 “병원 내부 차량 혼잡문제는 출입구를 넓히거나 출입 차단기를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해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강원대병원 측은 이 같은 출입구 재조정 문제는 예산 확보 등 준비 절차가 필요해 급히 해결하기엔 벅차다는 입장이다. 시 차원의 공격적인 교통 행정이 필요한 이유다. 현재 시행정은 교통과, 도로과, 도시계획과 등으로 관련 업무가 분산, 누구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해 시민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옛 춘천여고 교차로는 특히 외지인이나 초보 운전자에게는 마의 구간이다. 언덕길에 형성된 오거리 형태로 교통혼잡이 우려돼 점멸신호로 운영해왔다. 이곳은 2022년 11월 18일부터 정상신호로 운영을 바꾸면서 교통사고가 감소했다. 강원경찰청에 따르면 정상신호가 운영되기 전인 2019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9건의 보행자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신호 위반 차량에 의한 사고 1건 외에 없었다. 경찰은 신호등 가동 이후 3개월간 차량흐름도 개선됐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출퇴근 시간대 교차로 정체 길이가 출근 시 245m에서 85m로, 퇴근 시 340m에서 80m로 각각 줄어든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신호체계 변경 이후 초기에 이용자들의 불편이 있겠지만, 점차 차량흐름이 완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차량 정체보다 보행자의 안전을 중요시한 적극 행정이 성공적으로 정착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얘기다.

 

한림대학교춘천성심병원 앞 교차로에 차량과 보행자가 뒤섞여있다. (사진=MS TODAY DB)

▶ ‘답 없는’ 도로, 적극 행정 절실

춘천에서 대표적인 교통혼잡지역으로 꼽히는 곳은 한림대학교 춘천성심병원 앞 교차로다. 출퇴근 때마다 여섯 갈림길에서 몰려드는 차량으로 심각한 병목현상이 일어난다. 근처 중·고등학생은 물론 직장인 차량, 병원을 오가는 다양한 차량이 몰려 ‘꼬리물기’를 한다. 이 교차로는 한림대 학생과 병원 직원 7000여명, 하루 평균 3000명의 환자, 여기에 유봉여중·고 학생 1100명까지 하루 최대 1만명이 넘는 시민이 통행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보행자들은 점멸 신호등으로 눈치껏 도로에 끼어들어 아슬아슬하게 도로를 건너야 한다. 보행자가 도로 중앙에 갇혀 오도 가도 못 하면서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 위태로운 곡예 수준의 교차로 통과를 반복하고 있다. 한림대학교 재학생 이모(24)씨는 “재학 중 학교 앞 도로를 건너다 사고를 당할 뻔하지 않으면 학교에 다니지 않은 학생”이라며 “동기들 사이에서 ‘춘천은 도로에 몸부터 밀어 넣어야 건넌다’, ‘그러다 다치면 바로 앞 병원에 가면 된다’는 식의 웃지 못할 농담까지 번질 정도”라고 전했다.

실제로 보행자 교통사고도 잦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 조회 결과, 한림대학교병원 앞 200m 구간에서 지난 3년(2021~2023)간 발생한 보행자 교통사고만 10건에 달한다. 

그런데도 이 구간은 수년째 방치되고 있다. 도로가 좁아 신호기 정상가동으로는 해결책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개선 방안이 오갔지만, 대학병원과 인근 주민들과 얽힌 이해관계의 매듭도 풀지 못하고 있다. 춘천시에 따르면 해당 부지가 병원 측의 사유지여서 적극적인 협조를 기대하기 어려워 도로 정비 계획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아예 병원 부지를 피해 도로 폭을 확장하는 방안도 논의했지만,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반대 의견에 막혀 무산됐다. 춘천시 관계자는 “해당 도로에 민원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지만 도로 자체가 기형적인 구조로 형성돼 손 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최충익 강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시민과 경찰, 병원 등 이해당사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장기적으로 해결법을 모색해야 할 문제”라며 “무엇보다 춘천시민의 보행 안전을 위한 것이므로 용역비를 들여서라도 교통 전문 기관에 자문을 받는 등 적극적인 행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현재 민원이 발생하는 구간에 대해 내년 상반기 도시관리계획을 재검토하고 교통 여건 등 장기적인 개선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오현경 기자 hk@mstoday.shubhangiagrawal.com

(확인=윤수용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