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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맥국 도읍지 신북으로의 춘천 여행

[기록과 증언으로 보는 춘천이야기]

2024-08-29     칼럼니스트
허준구 전 춘천학연구소장

우리 고장 춘천은 강을 따라 고대부터 사람 살기 좋은 지리적 환경을 갖추었다. 중도 신사우동 신북읍을 중심으로 의암댐으로부터 춘천댐과 소양강댐에 이르는 강가에서는 사람이 살았던 유물과 유적이 대량 발굴되고 있다. 청동기 유물·유적 또한 이 지역을 중심으로 세계적 규모로 발굴되어 춘천이 신석기로부터 청동기와 초기 철기로 이어지는 시기에 일정 규모의 집단이 주거했음을 알 수 있다.

춘천에 소국(小國) 형태로 사람이 모여 살면서 가장 이른 시기에 중심을 이루었던 곳이 신북읍 일대이다. 이 신북읍을 중심으로 맥(貊)으로 불리는 나라는, 기원전 4세기경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최장 7세기 정도에 걸쳐 존재했다.

국내 맥국 관련 기록으로는 「삼국사기」가 가장 이르다. 춘천을 맥으로 강릉을 예로 기록하여서 강원도를 예맥의 고장으로 지금까지 일컫고 있다. 조선시대 문헌과 이 시기 그려진 지도에는 예외 없이 신북읍을 맥국의 도읍지로 기록하고 표기했다.

신북읍은 산과 강으로 둘러쳐져 있는 분지 형태로 외세의 침입에 방어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용산과 응봉, 배후령 능선과 청평산 마적산이 이어져 있다. 마적산을 이어 소양강이 남쪽으로 흐르고 우두산과 여우고개 밑에 이르러 동쪽으로 흘러 나간다. 우두산의 낮은 산세는 서북쪽으로 이어져 지내리를 가로질러 용산에 닿음으로 신북읍 모습이 완성된다.

 

1919년 신북 발산과 대궐터 모습.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춘천에는 맥국 관련 지명과 전설이 여럿 전해진다. 신북읍에 궐터(왕궁터), 맥둑, 아침못, 발산(왕뒤, 왕대산), 성문안, 마적산 등이 남아 있는 대표 지명이다. 여기에 많은 수의 고인돌과 적석총이 존재했고 유물·유적 또한 상당하게 분포되어 있다. 삼악산 삼악산성, 신북읍 발산리 삼한골과 동면 월곡리에 왕릉 이야기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멀리는 홍천, 횡성과 평창에 전해지는 태기왕이 맥국의 마지막 왕이라 전해진다. 분포하고 있는 지명과 전설을 종합해 보면 맥국의 범위가 춘천은 물론 횡성, 평창지역까지 확대됨을 알 수 있다.

춘천만으로 좁혀 보았을 때 동쪽으로 소양강이 흐르고 서쪽으로는 자양강이 흐른다. 소양강의 소양은 해가 떠오르는 곳이란 의미로 동쪽이 되고, 자양강의 자양은 해가 지는 곳이란 의미로 서쪽이 된다. 동강인 소양강과 서강인 자양강 사이에 놓이는 지역을 보면 신북읍으로부터 신사우동 중도가 그 지역에 해당한다. 이처럼 강 이름을 통해서도 고대 춘천의 중심지가 신북읍임을 알 수 있으며 이에 2021년 춘천시는 소양5교를 맥국교로 명명한 바 있다.

 

맥국교의 모습. (사진=춘천문화원)

맥국의 중심지는 신북읍 발산리 지역으로 이곳에 왕궁이 있었다. 발산을 한자로 쓰면 솥 발(鉢)에 뫼 산(山) 자를 쓰고 있다. 솥이 무슨 까닭에 지명에 들어갔을까? 청동기시대에는 왕의 권위의 상징으로 세 발 솥(鼎)을 만들었는데, 발(鉢) 자가 이 솥을 의미한다. 발산(鉢山)이란 지명은 맥국의 제단과 궁궐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단서이면서 신성지역을 뜻한다.

고조선의 도읍지에는 왕궁 동쪽에 연못을 두었는데, 발산 동쪽에 조연(朝淵)이 있으며 조연을 풀면 ‘아침못’이 된다. 신북 발산에 제단과 왕궁터 그리고 아침못이 남아 있음은 우연이 아니고 이는 맥국이 고조선의 명맥을 잇는 국가였음을 증명하는 단서이기도 하다.

발산을 동네 어르신들은 바리때의 의미인 ‘바리미산’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에서 바리미는 ‘바라다’라는 소망의 의미를 포함한다. 발산은 맥국의 주산(主山:鎭山)이었으며 나라의 권위를 상징하는 삼족의 솥발(鼎)이 설치된 제단이자 왕궁터이기도 하다. 신북읍은 신라가 춘천을 점령하기 전까지는 고대 춘천의 중심지였고 맥국의 주요 무대였다.

신북읍은 맥국의 중심지였고 지금도 여전히 춘천인의 인식 속에는 맥국의 성지로 남아 있다. 레고랜드를 지으며 하중도 일대를 대대적으로 발굴 조사하여 대단한 유물·유적을 찾아내었다. 이를 통해 신북읍으로부터 신사우동 중도에 이르는 지역에서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청동기문화와 초기 철기문화가 꽃피웠음을 알았고 이것이 이른바 고조선을 잇는 맥국이라는 사실에 한발 다가서게 되었다. 맥국교를 건너 맥국터비를 관람하고 발산에 올라 보고 아침못을 거닐며 맥국을 마음에 담는 작업을 이어 나간다면 춘천 고대사 탐구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 허준구 필진 소개
-전 춘천학연구소장
-강원도 지명위원회 위원
-춘천시 교육도시위원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