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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木瓜). 예천(醴泉) 것이 좋고 맛이 배 같고 물기가 있다.”

[도문대작] 42. 싱그러운 가을 향기를 간직한 모과

2024-09-07     김풍기 강원대 교수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도문대작(屠門大嚼)'은 푸줏간 앞을 지나면서 입맛을 쩍쩍 크게 다신다는 뜻이다. 이 책은 허균의 방대한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저술된 일종의 음식 관련 저술이다. 다시 분류하자면 음식문화를 기록한 책으로 보아야 한다. 허균의 고단한 유배지 식탁은 과거 풍성한 식탁 귀퉁이조차도 구경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를 극복한 것이 바로 상상력이었다. 그런 궁핍한 현실 속에서 허균의 미각적 상상력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김풍기 교수와 함께 걸작 도문대작을 탐닉한다. <편집자 주>

예전 어른들은 못생긴 사람을 표현할 때 모과에 자주 비유하곤 했다. 예전에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머리를 짧게 깎거나 민머리를 하도록 했기 때문에, 머리 모양이 그대로 드러났다. 매끈하게 예쁜 두상을 가진 친구도 많았지만 때로는 울퉁불퉁한 두상을 가진 친구도 있었다. 그런 경우 모과에 비유하곤 했다. 그만큼 모과는 큼직하지만 둥근 모습이 매끈한 것을 찾기가 쉽지 않은 과일이었다. 울퉁불퉁하면서도 여기저기 멍이 든 것처럼 거뭇거뭇한 상처가 있는 것이 모과의 일반적인 모습이었으니,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속담이 널리 통용될 만도 했다.

근대 이전 지식인들에게 모과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일이기는 했지만 ‘시경(詩經)’ <위풍(衛風) 목과(木瓜)>의 구절이 그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모두 3장으로 되어 있는 이 부분에서 첫 번째 장이 모과와 관련이 있다. “나에게 모과를 건네주기에, 나는 경거(瓊琚)로 보답했다오. 보답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길이 잘 지내보자는 뜻이었지요.”(投我以木瓜, 報之以瓊琚. 匪報也, 永以爲好也) 여기서 말하는 경거는 어여쁘고 귀한 옥으로 만든 패물을 말한다. 이 구절은 보잘것없는 물건을 선물로 주었더니 상대방이 귀한 물건으로 나에게 답례를 하더라는 것이다. 자신이 그에게 모과를 선물로 준 것은 굳이 무언가를 보답으로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와 오랫동안 잘 지내보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했다는 뜻이다. 이런 내용 때문에 자신의 보잘것없는 시문이나 작은 선물을 의미할 때 모과에 비유하곤 했다. 옛 시문에 등장하는 모과는 대부분 이런 맥락으로 인용되고 소재로 활용되었다.

허균이 ‘도문대작’에서 기록한 모과는 내게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모과(木瓜). 예천(醴泉)에서 나는 것이 가장 좋다. 맛이 배 같고 물기가 있다.”

 

가을이 오면 모과의 노릇노릇한 열매가 모습을 드러낸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나는 이 기록을 읽었을 때 문장을 잘못 읽었나 싶을 정도로 의아했다. 지금도 경상도 지역이 모과의 중요한 산지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가 예천 모과를 최고로 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런데 모과의 맛이 배와 같은 데다 과즙이 있다는 표현은 고개가 갸웃해진다. 내가 알고 있는, 그리고 경험한 모과는 시고 떫었고, 단단한 과육을 치아로 베어 물면 과즙이 별로 없어서 텁텁하기까지 했다. 신맛 때문에 침이 고일 수는 있어도 모과의 과즙이 있다고 표현할 정도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허균과 같은 미식가가 이렇게 표현했을 때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한문 기록에 등장하는 모과(木瓜)는 과연 우리가 지금 알고 있고 접할 수 있는 모과를 지칭하는 것일까? 이미 다른 글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허균 시대에 사용하던 용어는 지금의 용어와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지금도 같은 단어로 부르는 것이 있는가 하면, 전혀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있고, 같은 이름인데 다른 사물을 지칭하는 것도 있다. 모과는 약재로도 많이 사용되었으므로 ‘동의보감’을 비롯하여 ‘의림촬요(醫林撮要)’라든지 ‘구급방(救急方)’ 같은 의서에 자주 등장한다. 이들 기록은 동아시아의 전통 의학서와 궤를 함께하면서 편찬되었는데, 그럴 때 중국의 용어와 조선의 용어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처방전을 작성하였다. 어쩌면 의원들 사이에서 약재의 이름은 의미상 혼동을 주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금도 용어상 논란이 있는 것이 바로 모과다. ‘木瓜’라는 단어는 모과를 지칭하는 경우도 있고 명자나무를 지칭하는 때도 있다고 한다. 이 문제는 워낙 생물학적인 논점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여기서 다룰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허균이 맛본 경상도 예천의 모과는 지금 우리가 쉽게 접하는 일반적인 모과와는 조금 다른 품종은 아니었을까 하는 추정을 해보게 된다.

고려 후기 문인인 이규보(李奎報, 1168~1241)가 지인들과 함께 절에 놀러갔다. 밤이 늦도록 술을 마시다가 서너 명이 둘러앉아 차를 마셨다. 밤이 깊어가자 졸음이 밀려왔다. 그러나 스님이 나가더니 과일을 가지고 와서 접대하는 것이다. 금귤(金橘), 홍시(紅柹)와 함께 모과를 가지고 왔다. 흥미롭게도 세 가지 과일은 모두 허균의 ‘도문대작’에 들어있는 것이니, 예전부터 이 과일들은 손님 접대에 손색이 없는 것으로 꼽혔던 것이 아닌가 한다. 어떻든 그들은 차와 과일을 즐기면서 잠을 쫓으며 한밤의 흥취를 누렸다. 이규보는 이런 모습을 시로 읊었는데, 거기서 “모과는 반쪽 뺨이 불그레한데, 조각조각 칼끝에 떨어진다”(木瓜紅半頰, 片片落銛鋩. 동국이상국집 권8)고 읊었다. 보통 모과가 익으면 노르스름해진다. 그런데 이규보는 불그레하다고 했다. 이렇게 붉게 물드는 모과는 일본 모과 종류 다른 말로 명자나무 열매다. 이런 점들 때문에 모과와 명자나무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예전의 용어를 지금의 용어로 대체해도 되는지, 품종 간의 차이는 명칭의 차이를 만드는지 등에 대한 논의가 일어난다.

 

가을이면 모과를 수확해서 모과차를 만드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가을이면 모과를 수확해서 모과차를 만드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모과차 한 잔에 칼칼한 목이 부드러워진다. 목감기에 좋다면서 모과차를 많이 마시기는 하지만, 한약재로서의 모과는 특히 담이 왔을 때 특효약으로 썼다. 광해군도 담증(痰症) 때문에 모과를 장복하고 있었으며, 영조나 순조 역시 담증이 왔을 때 모과를 처방받았던 기록이 남아있다. 그 외에도 모과는 두통이나 무릎에 효과가 있다고 했으며, 특히 급체했을 때 특별히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증상이야 이제는 병원이나 약국에서 치료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으므로, 모과가 더는 약재로 자주 사용되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모과의 과육을 잘라서 꿀이나 설탕에 재운 뒤 그것을 차로 마시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여전히 모과의 향긋함과 감기나 소화에 도움을 받곤 한다.

허균이 맛본 예천의 모과는 어떤 품종과 맛이었을까. 정확하게 추정할 수는 없지만, 시와 술과 풍류를 좋아했던 그로서는 모과를 복용하면서 향과 약재로 도움을 받았으리라 생각된다. 가을이 오면 모과의 노릇노릇한 열매가 모습을 드러낸다. 모과차 한 잔을 즐기면서 가을 하늘을 바라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