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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명절이 두려운 아내에게

2024-09-16     권준수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석좌교수
권준수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석좌교수

 

무더위가 한풀 꺾이자 어김없이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추석과 같은 명절에는 항상 ‘명절증후군’이라는 정신과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명절증후군’이란 명절동안 받는 정신적 혹은 신체적 스트레스로 인해 나타나는 여러 증상들을 이야기한다. 가장 흔한 증상으로는 두통, 어지러움, 위장장애, 소화불량 등과 같은 신체적 증상과 피로, 우울, 불면 등의 정신적 증상이 있다.

특히 ‘명절증후군’에서 나타나는 신체적 증상은 명절에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이차적인 증상인 경우가 많다. 자주 보지 못하던 가족이나 친척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으나,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결혼, 학교, 취직 등 당사자에게는 민감할 수 있는 주제들이 자연스레 오간다. 잘못하다가 언쟁으로 발전되기도 하며, 반갑게 만났다가 찝찝하게 헤어지기 일수다.

솔직히 성실하지 않은 남편으로서 필자는 명절증후군을 겪어본 적은 없으나, 약 40년째 일년에 두 번씩 명절증후군을 겪어온 아내를 곁에서 지켜보며 나름의 ‘명절 증후군’ 5원칙을 만들어 보았다.

첫째,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에게는 칭찬으로 대화를 시작하자. ‘건강 해지셨네요’ ‘얼굴이 좋아 보입니다’ 등의 긍정적인 말은 아무리 인사치레라도 무조건 기분이 좋아지게 되어있다. 평소 칭찬이 어색한 사람이라면, 돌려쓸 수 있는 고정 멘트 몇 가지를 준비하자. 진심이 아니면 어떤가? 기분 좋은 대화의 시작은, 그 이후의 시간들도 기분 좋게 만들기 마련이다.

둘째, 일은 n분의 1이다. 특히 명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일거리가 많다. 차례를 지내는 집이라면 일은 두배, 세배가 된다. 고기와 전을 굽고, 과일을 준비하고 밤껍질도 깎아야 하고, 설거지도 태산이다. 우리 집의 명절 풍경을 떠올렸을 때, 일하는 사람과 일하지 않는 사람이 명확하게 나뉘어지는가? 그렇다면 이번 추석에는 모두가 나누어서 일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보자. 그것이 어렵다면 일 자체를 줄일 수 있도록 명절 행사를 간소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셋째, 연휴 중 마지막 하루는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쉬자. 연휴 마지막 날까지 꽉 채워 가사노동을 하거나 휴일처럼 놀면, 그날 저녁부터 월요병 아닌 월요병에 시달리는 것은 당연하다. 예방책은 단 하나, 휴식을 통해 내일의 나를 위한 에너지를 다시 충전하는 것.

넷째, 그것이 누구든 비교하는 말은 절대 하지 말자. 누구는 어디에 취직을 했다네, 누구는 결혼한다는데 등. 직접적인 비교가 아니더라도 비슷한 상황의 사람에게는 비교하는 말로 들릴 수 있다. 인생은 어차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정답은 없다. 각자의 환경에서 각자의 처지에서 자신만의 삶을 사는 것이니, 나의 잣대를 남에게 들이대지 말자.

마지막으로, 개인에게 예민한 주제는 삼가는 것이 좋다. 진로, 취업, 결혼 등 예민한 대화 주제는 피하자. 오랜만에 만난 가족끼리 대화할 주제는 무궁무진할 터이니, 굳이 누군가 기분 나쁠 수 있는 주제는 꺼내지 않아도 된다. 차라리 날씨 얘기를 하는 것이 백배 낫다.

최근 한 취업사이트에서 성인남녀 130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열 중 아홉은 명절증후군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명절증후군’은 명확한 질환으로 정의되지는 않으나, 이 정도의 높은 ‘유병률’이라면 일반적인 질환보다도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맞다. 가벼운 운동, 충분한 휴식, 생활 리듬이 틀어지지 않는 규칙적인 생활 등과 더불어, 자신이나 상대를 배려하는 마인드를 통해 이번 추석은 스트레스 없는 재미있고 즐거운 추석 연휴를 즐겼으면 한다.

■ 권준수 필진 소개
- 전 서울의대 정신의학과 교수 

- 전 대한조현병학회 이사장 

-정신건강의학계의 국제적 권위자로, 조현병과 강박증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