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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전 세상은 다시 오지 않는다."

[편집인이 만난 사람] 권준욱 전 국립보건연구원장 코로나 19 방역정책과 경험 묶어 '감염병X' 책 출간 '신뢰, 신속한 공표, 투명성'등 국민과 소통이 중요

2024-09-17     김동섭기자
지난 9일 MS TODAY 접견실에서 권준욱 전 국립보건연구원장이 코로나19 방역 정책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진=이정욱 기자)

 

코로나 19가 한창이던 2020년부터 정은경 질병관리청장과 교대로 TV에 나와 2년여간 브리핑을 하던 국립보건연구원장 권준욱(60)은 ‘코로나 영웅’이었다.

코로나19가 종막을 고하던 2023년2월에 퇴임한 뒤 연세대 의대 연구교수로 일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공공보건정책관, 건강정책국장을 거쳐 대변인을 역임한 그는 코로나 극복 경험담을 ‘감염병X’란 제목에 ‘코로나 이전 세상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소제목을 붙인 책으로 펴냈다. 그는 공직 생활 중 춘천에 온 적 있었지만, 퇴직 후 방문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10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코로나 방역 정책은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도시를 봉쇄시키고 격리시키는 완전한 방역이냐, 아니면 일상을 유지하는 최소 방역이냐.” 그런 양갈래 고민 끝에 ‘생활방역’이라는 조어도 탄생했다.

코로나19는 2020년 1월21일 중국인 감염자가 비행기로 입국하면서 시작됐다. “코로나가 올 것을 알고 대비했나”라는 질문에 그는 2020년1월2일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라는 장관 지시가 내려갔다고 했다. 당시 보건복지부 대변인으로 매일 아침 5시에 복지부장관에게 언론동향과 뉴스를 브리핑하는데 그의 촉각에 걸린 것은 1월1일자 외신 뉴스였다. ‘우한에 폐렴이 발생했다'는 보도에 위험 신호를 감지했고, 1월2일 장관에게 보고하자, 곧바로 대비하라는 장관 지시가 내려졌다. “돌이켜보면 2019년 11월쯤부터 우한에서 코로나가 유행해 그런 보도가 나온 것이겠지요. 방역당국자 입장에서는 그런 작은 외신 보도조차 무시하면 안된다는 것을 절감했어요.”

그는 코로나 발생 초기 브리핑에서 ’대규모 유행 가능성‘같은 단어를 사용했다가 고위 당국자들에게 경고성 지적을 받았다.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메르스, 사스, 신종플루 등 감염병 방역 일선을 맡아왔던 그는 “방역은 반발짝이라도 앞서야 하고, 항상 비관적으로 대응하라는 것이 방역행정을 담당한 선배들의 충고였다"며 선제 조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권준욱 전 국립보건연구원장이 저술한 감염병 X. (사진=박영사)

 

미국, 일본 등은 백신을 일찍 구매했는데 우리는 너무 늦었다는 지적도 많았다. 우리가 백신을 도입키로 결정한 것은 2020년 9월이었다. 그해 8월까지 “코로나 백신을 선구매한 선진국 중 과연 어느 국가가 환자를 감소시키고 안전하게 접종 할 수 있는 지를 지켜보겠다”고 브리핑했던 그였다. 백신의 안전성을 검토한 뒤에 백신사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은 겉보기엔 그럴듯한 소신의 표명으로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백신은 전국민이 한차례 이상 맞을 양만큼 구매는 당연했고, 그래야만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속내를 드러낼 수 없었다.  “당시 구매 조건이 불리했더라도 과감하게 구매하겠다고 나서야 했는데, 나뿐 아니라 누구도 감히 그런 말을 할 용기를 가지지 못했어요.” 백신 구매를 주장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제약사 음모설' 을 비롯해 예산 낭비 등 정치적인 책임까지 져야하기 때문이었다.

마스크 착용도 코로나 초기에는 미국 방역당국의 불필요하다는 의견을 브리핑했던 것도 잘못된 정보전달이었다고 스스로 비판했다. 자체 방역 경험이 부족해 선진국 방역정책을 무작정 베끼기한 결과였다고 반성문을 썼다.  그는 감염병과 싸울 무기는 국민들과의 소통이라고 단언했다. 신속한 공표와 투명한 행정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얻어야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동안 메르스, 사스, 신종플루 등 감염병은 5년마다 우리에게 찾아왔고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으로 그나마 자가격리, 음압병상 설치 등이 이뤄졌다. 19세기 콜레라 대유행은 상·하수도 정비를, 19세기 말 결핵은 거리에서 침 뱉는 습관을, 2003년 사스는 마스크 사용을 각성시켰다. 하지만 앞으로 닥쳐올 새 감염병에 대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보건위기 사태를 겪으면 더 성숙한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우리는 아픈 기억을 애써 잊고, 담당자를 감사해서 징계하는데만 익숙해요. 그러니 새 감염병이 닥치면 새 담당자들이 다시 맨땅에서 헤딩해야 합니다.” 그는 공직사회의 오랜 폐단을 그렇게 표현했다.

대담= 김동섭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