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바카라

춘천의 강물은 흘러야 한다

[기록과 증언으로 보는 춘천이야기]

2024-10-10     허준구 강원문화예술연구소장
허준구 강원문화예술연구소장

춘천은 조선의 대표적 난공불락(難攻不落)이자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 알려졌다. 춘천은 사방이 모두 막힌 전형적인 고립형 분지로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함락시킬 수 없을 만큼의 난공불락이다.

춘천분지 외곽으로 동남쪽에 대룡산(899m), 남쪽에 금병산(652m), 서쪽에 삼악산(654m), 북배산(869.6m), 가덕산(857.5m), 몽덕산(694.8m), 북쪽-북동쪽에 구봉산을 비롯하여 400m대의 구릉이 분포하고, 분지 바깥으로 서북쪽에 매봉(1436m), 촛대봉(1125m), 북쪽에 용화산(878m), 북동쪽에 청평산(778m), 부용산(881m), 죽엽산(859m), 동쪽에 가리산(1051m)이 자리한다. 이곳 산에 올라 바라보면 어느 산 하나 빠짐없이 춘천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렇게 높은 산으로 둘러 있었기에 성호(星湖) 이익(李瀷) 선생은 「성호사설」에서 이옥의 말을 인용하여 춘천을 중국 관중의 장안과 같다고 하며 “중첩한 산이 사방을 둘러싸고 옹호했고 두 강물이 남쪽에서 합류하며 가운데에는 비옥한 들판이 펼쳐져 수백 리에 달한다”라고 하였다. 이어 삼면을 막고 지키면 한 사람이 관문을 막고 있어도 만 명도 뚫고 나가지 못할 듯하니, 정말 난공불락의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도 하였다. 

이러한 난공불락의 춘천을 성호 선생은 ‘금탕불발(金湯不拔)의 뛰어난 승경’이라고 극찬하며 국가의 안위를 지켜낼 만한 보장지(保障地)라고 지목하였다. 금탕(金湯)은 금성탕지(金城湯池)의 줄임말로 방어시설이 철통같이 튼튼하여 공격하기 어려운 성(城)을 이르는 말이니, 난공불락이면서 경치까지 빼어난 지역이란 뜻이다.

여기에 한국 풍수지리의 완결판인 이중환의 「택리지」에 “우리나라의 수계로 가장 살기 좋은 곳은 대동강 수계의 평양이고, 둘째로 춘천의 소양강 수계(水界)를 들고 있으니, 이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맥국 때부터의 일이다”라고 하였다. 강을 접하고 있는 도시로 평양 다음으로 살기 좋은 도시가 춘천이라고 말하였다.

춘천은 둘러친 산들로 인해 국가의 안위를 지켜낼 수 있는 보장지요, 강으로 인해 살기 좋은 낙토인 셈이다. 「논어」에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라고 하였으니, 춘천은 ‘어진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이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전형적인 요산요수(樂山樂水)’를 갖춘 도시인 셈이다.

그런데 근현대에 이르러 춘천 수계에 큰 변화를 준 사건이 있었다. 소양강을 포함하는 북한강수계에 댐이 건설된 일이다. 춘천 인근이지만 1944년에 건설된 화천댐이 일찍이 건설되었고, 1960~70년대 들어 1965년 춘천댐, 1967년 의암댐, 1973년 소양강댐이 차례로 건설되며 춘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인공호수의 출현이었다. 

 

춘천 소양강에 물안개가 피어오른 모습. (사진=MS TODAY DB)

춘천호 의암호 소양호 등의 거대 인공호수가 만들어지면서 춘천은 ‘호반의 도시’라는 별칭을 일찍이 가지게 되었다. 여기에 소양강댐에서 발전 방류하면서 의암호에 갇혀 있던 물과의 온도 차에 의해 물안개가 만들어지며 ‘안개 도시’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이 안개는 겨울이면 강가의 나무에 엉겨 붙어 상고대를 만들며 겨울철 특별한 진풍경을 연출하였다.

안개는 빛깔로 표현하면 회색에 가깝다. 흘러야 할 강물이 흐름을 멈춤으로 강물이라는 자연이 생태계로부터 단절이 일어났다. 안개에 의해 가야 할 방향을 상실하고 멈춰 섰다. 마치 미디어 산업사회가 되면서 사람이 외딴방에 갇혀 세상과의 단절이 일어난 듯 강물은 그렇게 멈췄다. 한수산 작가는 안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춘천댐 의암댐이 속속 강을 막으면서 이루어진 호수에서 피어오른 안개가 도시를 뒤덮기 시작했다. 댐이 강물이라는 자연과 생태계에 대한 단절이었다면 아침에 피어올라 한낮이 될 때까지 가시지 않고 거리와 골목을 뒤덮던 안개는 나에 대한 춘천의 양육 방식의 하나였다. 내 정서를 휘감고 있던 단절 혹은 자폐였다.

그래서 춘천의 강물은 흘러야 한다.

■ 허준구 필진 소개
-전 춘천학연구소장
-강원도 지명위원회 위원
-춘천시 교육도시위원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