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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도 먹어보고 싶어 했던 마유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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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금도 먹어보고 싶어 했던 마유포도

    [도문대작] 26. “신천(信川)에 있는 윤대련의 집에 한 시렁이 있다. 맛이 너무 좋아서 중국의 마유포도에 뒤지지 않는다.”

    • 입력 2024.05.18 00:02
    • 기자명 김풍기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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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포도는 서역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기록이 많다. 그중에서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당태종이 서역의 포도 묘목을 가져와서 궁궐에 심었다는 것인데, 그 품종이 바로 마유포도(馬乳葡萄)였다. 약간 길쭉한 포도알이 연한 초록빛으로 달리는 마유포도는 그 맛도 상큼하면서도 달아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품종이다. 마유포도는 이미 고려 시대에 한반도 지역에서 재배되고 있었다는 명확한 기록이 있으니, 우리에게도 제법 일찍 전해졌던 셈이다.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포도 잎이 무성해지고, 작은 송이가 달려서 뜨거운 여름 햇살에 익어가고, 가을이 되어 검은 알이 탐스럽게 달리는 일련의 과정은 모두 문인들의 관심거리였다. 특히 고려 후기가 되면 문인들 사이에서 포도를 감상하면서 즐기는 일이 잦아졌다. 공민왕 때 활동했던 무신인 정휘(鄭暉, 생몰연대 미상)는 정원에 포도 시렁을 만들어서 덩굴을 올리고 그곳을 ‘포도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고려 시대 개풍군에 있던 신효사(神孝寺)에도 포도헌(蒲萄軒)이 있었다. 식사(息師, 식 스님)가 주석하고 있던 당시에는 정몽주(鄭夢周, 1337~1392), 김구용(金九容, 1338~1384), 이숭인(李崇仁, 1347~1392) 등 당대 최고의 문인들이 모여서 포도를 감상하면서 시문을 짓기도 했다. 이숭인은 식(息) 스님이 거처하는 신효사 누각 아래로 시렁에 포도가 가득 열렸다고 하면서, “가장 좋은 것은 쟁반 가득 쌓아놓은 마유이니, 어찌 술을 만들어서 양주(涼州)를 얻을 필요가 있겠는가”하고 읊었다. 여기서 말하는 ‘마유’가 바로 마유포도를 지칭한다.

     

    연한 초록빛으로 달리는 마유포도는 그 맛도 상큼하면서도 달아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품종이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연한 초록빛으로 달리는 마유포도는 그 맛도 상큼하면서도 달아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품종이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마유포도는 맛있는 포도의 상징적인 표현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 품종은 워낙 맛있는 포도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을 비롯한 동시대 문인들의 시에는 마유포도가 여러 차례 등장하고 있으므로 이 시기 지식인들에게 널리 사랑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산군은 승정원에 마유포도 한 송이를 하사하면서, 이것을 맛보고 나서 각각 시를 지어서 바치라고 명령을 내린 적도 있다. 연산군은 이어서 마유포도라든지 수정 포도를 민간에서 구해 올리라고 명령을 내린 적도 있으니, 이 당시 맛있는 포도가 민간에 일부 재배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 포도는 허균의 ‘도문대작’에서도 등장하는데,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포도(蒲桃). 마유(馬乳) 포도는 드문데, 신천(信川)에 있는 윤대련(尹大連)의 집에 한 시렁이 있다. 맛이 너무 좋아서 중국의 마유포도에 뒤지지 않는다.”

    허균이 사용하는 ‘蒲桃(포도)’는 현재 가장 많이 표기되는 한자 ‘葡萄’와 같은 뜻이며, ‘蒲萄’로 표기하기도 한다. ‘시렁(架)’은 포도 덩굴을 올리기 위해서 만들어주는 일종의 지지대와 같은 것을 말한다. 허균은 명나라에 여러 차례 사신으로 다녀온 경험이 있으므로 마유포도를 먹어보았다. 허균 역시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니 분명 마유포도를 먹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고려 시대 이래 이 품종은 한반도 지역에서 식재되어 재배되었던 기록이 있다. 그러니 조선 땅에서 생산되는 마유포도 역시 먹어보았을 것이다.

    허균은 1607년(선조40) 7월에 내자시정(內資寺正)으로 임명되어 약 5개월가량 근무한 적이 있다. 그는 불교를 숭상했다는 혐의를 받아서 삼척부사에 임명된 지 2개월 만에, 근무지인 삼척에 도착한 지 13일 만에 탄핵을 받아서 결국은 해직된다. 2개월 뒤에 다시 복직되는데, 이때 맡았던 직책이 바로 내자시정이다. 이 벼슬은 궁궐에 소용되는 각종 쌀, 곡식 가루, 기름, 술, 꿀, 채소, 과일 등을 맡아보는 책임자이며, 궁중의 연회를 총괄하는 직책이다. 직책의 특성상 허균은 조선에서 생산되는 혹은 공물로 올라오는 각종 진귀한 음식을 많이 맛보았을 것이다.

    이러한 추정이 무리도 아닌 것이, 그가 내자시에 근무할 때 지은 시를 모아서 ‘태관고(太官藁)’를 편찬했는데, 거기에 마유포도를 읊은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그 작품에서 허균은 이렇게 읊었다. “길게 뻗은 포도 덩굴 가을 이슬 머금으니, 마유는 주렁주렁 옥 같은 액이 흐르네.”

     

    고려 시대 이래 이 품종은 한반도 지역에서 식재되어 재배되었던 기록이 있다. 그러니 조선 땅에서 생산되는 마유포도 역시 먹어보았을 것이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고려 시대 이래 이 품종은 한반도 지역에서 식재되어 재배되었던 기록이 있다. 그러니 조선 땅에서 생산되는 마유포도 역시 먹어보았을 것이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허균이 ‘도문대작’에서 마유포도를 서술하면서 언급한 신천은 그가 한때 도사(都事)를 지냈던 황해도에 있는 지역이다. 윤대련이 어떤 인물인지 알 수는 없지만, 신천은 대동강이 서해와 만나는 지역과 그리 멀지 않아서 중국과의 교역이 상당했을 뿐 아니라 황해도와 평안도의 물산이 모이는 집산지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앞서 언급한 신효사가 있는 개풍군 역시 평안도로 가기 위해서는 신천을 지나야 하는 곳임을 상기한다면, 이곳에서 마유포도를 만나는 것이 희귀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중국 사신으로 갔을 때라든지 궁중에서 근무할 때, 혹은 평안도를 오가면서 들렀던 개풍 지역 등지의 마유포도를 두루 맛보았을 것이다. 그중에서 윤대련 집에 있는 마유포도가 가장 맛있다고 했으니 입맛 섬세한 허균이 맛본 그 품종이 궁금해진다.

    마유포도가 지금 어떤 품종을 말하는 것인지는 섬세한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허균은 신천에서 맛본 마유포도의 맛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당태종의 고사가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겠지만, 진귀한 대접을 받는 포도 중에서도 특히 맛있는 마유포도는 그의 기억에 오래도록 각인되었다. 귀양바치에게는 절대 허여되지 않을 듯싶은 포도를 기록하면서,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가 새콤달콤하고 귀한 포도를 맛볼 날을 꿈꾸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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