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바카라


허균 ‘도문대작’, 과일 중 귤에 해당하는 다섯 가지 종류 기록
  • 스크롤 이동 상태바

    허균 ‘도문대작’, 과일 중 귤에 해당하는 다섯 가지 종류 기록

    [도문대작] 29. 귤의 권력과 귀양살이의 서러움

    • 입력 2024.06.08 00:02
    • 기자명 김풍기 강원대 교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4월 말에서 5월 초가 되면 제주도는 온통 귤꽃 향기로 가득하다. 처음 귤꽃 향기를 맡았을 때, 나는 아름답고 달콤하고 신선한 향기에 매혹되었다. 제주에서 한동안 지내려고 예약해 놓은 숙소로 갔는데 어디선가 좋은 향기가 바람결에 스쳐왔다. 그때만 하더라도 짐을 옮기고 집안을 정리하느라 부산스러웠기 때문에 향기의 소종래(所從來)를 확인하지 못했다. 며칠 뒤 숙소가 정리되자 나는 제주도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하루는 서귀포시 주변에서 노닐다가 저녁을 먹을 겸해서 도시 외곽에 있는 식당을 찾아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렸는데, 어디선가 향기가 흘러왔다. 아까시나무꽃 향기 같기도 하고 라일락꽃 향기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주변에는 아까시나무도 라일락 나무도 보이지 않았다. 식사를 잠시 미루고 주차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는데, 저녁 빛이 사라지면서 어두워가는 한쪽 구석에 흰 꽃이 보였다. 다가가 보니 바로 귤나무였다. 꽃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아름다운 향기는 더욱 짙어졌다. 그제야 나는 향기의 주인공이 귤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자란 고향이나 사는 지역에서는 귤나무를 볼 수 없으므로 꽃향기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 모든 꽃향기는 아름답지만 내 경험 속에서 가장 좋은 것은 매화라든지 라일락꽃과 같은 것이었다. 귤꽃 향기가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그 뒤부터 귤밭 주변을 지나기라도 하면 늘 차창을 활짝 열고 속도를 줄여서 향기를 한껏 감상하곤 했다. 아주 오래도록 봄날의 제주는 내게 귤꽃 향기로 기억될 것 같았다.

     

    꽃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아름다운 향기는 더욱 짙어졌다. 그제야 나는 향기의 주인공이 귤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꽃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아름다운 향기는 더욱 짙어졌다. 그제야 나는 향기의 주인공이 귤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용어에 따라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밀감, 감귤, 귤 등으로 불리던 이 과일은 오랜 옛날부터 제주도 지역에서 재배되어 한반도 지역에 알려졌다. 고려 문종 때 이미 귤은 진상용으로 기록에 나타나지만, 조선 시대가 되어서야 지방에서 궁궐로 올리는 공물 중 귀하고 중요한 품목으로 자리를 잡는다. 근대 이전의 기록에 귤의 명칭이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각각의 품목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생물학이나 원예학 등 관련 학문에서 귤의 범주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자세히 밝히는 일은 내 능력 밖의 일이기도 하고 이 글의 목표를 벗어나는 일이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여러 종류의 귤을 그저 ‘귤’이라는 단어로 범칭할 수밖에 없다.

     허균(許筠)은 자신의 ‘도문대작(屠門大嚼)’에서 예전에 먹어보았던 과일 중에서 귤에 해당하는 다섯 가지 종을 기록하였다. 금귤(金橘)은 ‘제주(濟州)에서 나는데 맛이 시다’고 되어 있다. 감귤(甘橘)은 ‘제주에서 나는데 금귤보다는 조금 크고 달다’, 청귤(靑橘)은 ‘제주에서 나는데 껍질이 푸르고 달다’, 유감(柚柑)은 ‘제주에서 나는데 감자보다는 작지만, 매우 달다’고 되어 있다. 감자(柑子)는 제주에서 생산된다고 적었다. 이들은 모두 넓은 의미에서 귤에 해당하는 종들이다.

     

    허균(許筠)은 자신의 ‘도문대작(屠門大嚼)’에서 예전에 먹어보았던 과일 중에서 귤에 해당하는 다섯 가지 종을 기록하였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허균(許筠)은 자신의 ‘도문대작(屠門大嚼)’에서 예전에 먹어보았던 과일 중에서 귤에 해당하는 다섯 가지 종을 기록하였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지금도 제주도에서는 꾸준한 종자 개량을 통해서 전통적인 귤 이외에도 한라봉, 천혜향, 카라향 등 굉장히 다양한 품종을 생산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 이러한 종자 개량이 활발하지는 않았겠지만, 제주도에 자생하거나 오래도록 재배되어 온 귤 종류가 다양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아쉽지만 허균이 기록하고 있는 이들 품종은 그의 과일 시식 경험 속에서 충분히 구분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정확한 생물학적 품종에 비정 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한라봉과 천혜향을 구분하면서 맛을 즐길 수는 있지만, 그것의 생물학적 지식은 잘 모르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그렇지만 허균의 기록을 통해서 우리는 제주도에서 얼마나 많은 귤 품종이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허균보다 조금 뒤에 살았던 이건(李健, 1614~1662) 역시 제주도에서 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면서 ‘제주풍토기(濟州風土記)’라는 저술을 남긴 바 있다. 거기에서 이건은 귤의 다양한 이름을 소개하고 있다. 해당 항목의 내용은 이렇다. “감자(柑子)라는 종류의 이름은 아주 많다. 감자, 유자(柚子), 동정귤(洞庭橘), 금귤(金橘), 당금귤(唐金橘), 황귤(黃橘), 산귤(山橘), 유감(柚柑), 당유자(唐柚子), 청귤(靑橘) 등 모두 알 수가 없을 정도다.” 그리고는 가을이 되어 열매가 맺기 시작하면 관아에서 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과일의 개수를 세어서 장부를 만들고 그것이 익으면 진상하는 용도로 공급한다고 하며, 과일의 숫자가 줄면 즉시 주인을 징벌하므로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게 한다는 내용도 덧붙여 기록하고 있다. 그 정도로 귤은 공물로서의 높은 가치를 지녔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귤을 재배하는 제주도의 농민들을 옥죄는 족쇄처럼 되어 버렸다.

     백성들의 눈물겨운 사연에 많은 사람이 감탄했겠지만, 나는 그들의 절박함이 새삼스러웠다. 임금의 은택을 갚는 것도 갚는 것이지만, 자신들에게 닥칠 엄청난 징벌과 불이익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싶었다. 어떻든 제주도의 귤은 이래저래 많은 사연을 남긴 품목임이 분명하다.

     농민들이 고생해서 수확한 귤이 진상되면 조정에서는 종묘에 제수로 올리기도 하고 왕실 음식에 활용하기도 했다. 그중에 일부는 왕이 신하들에게 하사하는 용도로 쓰였다. 일반 사대부가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귤을, 그것도 왕이 하사한 귤을 정말 소중하게 여겼다. 조선 전기에는 귤을 신하들과 나누어 먹은 뒤 그것을 소재로 시를 짓기도 했고, 어렵게 구한 귤을 소중한 선물로 주고받기도 했다. 또한, 성균관의 유생들에게 귤을 하사한 뒤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황감제(黃柑製) 혹은 감제(柑製)라는 이름의 과거 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이 과거 시험은 1536년(중종 31) 처음 시행된 이래 조선 후기가 되면 ‘속대전(續大典)’에 규정이 올라갈 정도로 관례화되어 치러질 정도였다.

     다른 사대부들과는 달리 허균은 궁중의 음식을 총괄하는 관직을 지낸 적이 있으므로 귤에 대한 경험은 남달랐을 것이다. 남들은 한 종류도 쉽게 만날 수 없는 귤을 나열하면서 그의 마음에는 화려했던 과거의 나날들이 뇌리를 스쳐 갔을 것이다. 귤을 통해서 남들과 다른 자신의 처지를 인식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음식을 총괄하면서 임금 옆에서 권력을 누렸던 자신의 과거가 한낱 힘없는 귀양바치에 불과한 현재와 대비되면서 인생의 부침을 다시 한번 되뇌어보았으리라.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1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