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오세영
흐르는 계곡 물에
귀 기울이면
3월은
겨울옷을 빨래하는 여인네의
방망이질 소리로 오는 것 같다
만발한 진달래꽃 숲에
귀 기울이면
3월은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함성으로 오는 것 같다
새순을 움 틔우는 대지에
귀 기울이면
3월은
아가의 젖 빠는 소리로
오는 것 같다
아아, 눈부신 태양을 향해
연녹색 잎들이 손짓하는 달,
3월은
그날, 아우내 장터에서 외치던
만세 소리로 오는 것 같다
*오세영:1965년「현대문학」등단*시집「봄은 전쟁처럼」「적멸의 불빛」외 다수 *서울대명예교수.
코로나 팬데믹(pandemic)속에서도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우리가 고난으로 주저앉아 있던 시대에도 초침은 어김없이 돌아갔듯이---. 이 어두운 환란 속에서 어느 새 삼라만상은 눈을 뜨고 입을 열고 우리들 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 희망이다. 환희다. 3월은!
3월을 맞는 시인의 귀와 눈은 참 밝고 예리하다. 자연의 소리를 가장 빨리 듣고 빨리 느끼는 전령사다. 이 시의 화자는 “흐르는 계곡물 소리에서 겨울옷을 빨래하는 여인네의 방망이질 소리”를 듣는다. “진달래꽃 숲에서는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함성을 듣고”, “새순을 움 틔우는 소리에서는 아가의 젖 빠는 소리” 그 생명의 소리를 듣는다.
자연과 사람의 소리를 절묘하게 매치시키는 상상력이 이 시인의 눈과 귀다. 어디 그 뿐인가! 시적 시공간(時空間)을 확대하여 민족적 수난의 역사까지 끌어온 기법은 가히 시인의 높은 사유의 경지가 우리들 삶의 배경을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아아, 눈부신 태양을 향해/연녹색 잎들이 손짓하는 달,/3월은/그날, 아우내 장터에서 외치던/만세소리로 오는 것”이라고 환유한다. 그 어둔 역사 속에서 불타오르던 통곡의 만세소리는 잠자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다시 일깨워 주는 희망의 함성으로 들려온다.
이 만세소리처럼, 우리의 이 어려운 역병의 시대도 빨리 환희의 새 소식으로 들려왔으면 좋겠다. 신세계 신문명을 다시 열었으면 좋겠다. 천지에 ‘아가들의 젖 빠는 소리’ 같은 신성(神聖)한 그 소리로, 희망의 꽃망울 터지는 소리가 세상 가득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