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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의 혀 ‘녹설’(鹿舌)과 꼬리 ‘녹미’(鹿尾)는 귀한 대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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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슴의 혀 ‘녹설’(鹿舌)과 꼬리 ‘녹미’(鹿尾)는 귀한 대접을 받았다

    [도문대작] 40. 사슴의 혀와 꼬리로 만드는 진귀한 음식

    • 입력 2024.08.24 00:01
    • 수정 2024.08.26 23:45
    • 기자명 김풍기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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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도문대작(屠門大嚼)'은 푸줏간 앞을 지나면서 입맛을 쩍쩍 크게 다신다는 뜻이다. 이 책은 허균의 방대한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저술된 일종의 음식 관련 저술이다. 다시 분류하자면 음식문화를 기록한 책으로 보아야 한다. 허균의 고단한 유배지 식탁은 과거 풍성한 식탁 귀퉁이조차도 구경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를 극복한 것이 바로 상상력이었다. 그런 궁핍한 현실 속에서 허균의 미각적 상상력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김풍기 교수와 함께 걸작 도문대작을 탐닉한다. <편집자 주>

     음식에 대한 취향은 시대나 공간, 사회적 신분이나 계층, 경제적 정치적 처지 등에 따라 다르게 구성된다. 허균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일찍 과거에 급제하여 훌륭한 인재로 촉망받았다. 비상한 머리와 좋은 형제자매들, 부친의 사회적 명망 등 당시의 조선에서는 평균보다 훨씬 높은 환경에서 자랐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음식에 대한 그의 기억은 이러한 사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서 거칠고 힘든 유배 생활을 하는 그에게 음식에 대한 옛 기억은 다양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그 상상력이 반영된 ‘도문대작’의 기록에서 일정 부분 음식에 대한 왜곡을 부추겼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허균 당시인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 조선의 음식에 대한 한 개인의 지형도를 잘 보여 준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

    허균의 ‘도문대작’에서 흥미로운 점이 많지만, ‘비주지류(飛走之類)’로 분류한 항목은 더욱 눈길이 간다. 하늘을 나는 새와 땅 위를 달리는 짐승을 의미하는 ‘비주’ 부분에는 웅장(熊掌), 표태(豹胎), 녹설(鹿舌), 녹미(鹿尾), 고치(膏雉), 거위(鵝) 등 여섯 가지가 들어있는데, 허균은 그 뒤에 이렇게 부기(附記)해 놓았다. “대체로 토산인 돼지, 노루, 꿩, 닭 등은 어느 고을이든 있기 때문에 번잡하게 꼭 기록할 필요는 없다. 다만 매우 좋은 특산물이거나 요리로서 정말 맛있는 것은 기록하여 다른 것과 구별하였다.”

    여섯 가지 중에서 웅장과 표태는 특산물에 속하고 나머지 네 가지는 맛있는 요리에 해당할 것이다. 그중에서 녹설과 녹미는 근대 이전 동아시아 지역에서 진미(珍味)로 손꼽히던 요리다. 노루는 한반도 전 지역에서 많이 잡히는 짐승이기 때문에 특산물이라 할 수 없지만, 노루에서 나오는 식재료 중에서 사슴의 혀인 녹설과 사슴 꼬리인 녹미는 생산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귀한 대접을 받았다. 오죽하면 조선왕조실록에 사슴 꼬리와 사슴 혀가 맛있는 음식이기는 하지만 이것을 공물로 바치느라고 백성들에게 끼치는 폐단이 너무 크니 공물에서 제외하라는 기록이 나올 정도였겠는가.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녹미와 녹설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녹설(鹿舌). 회양(淮陽) 사람들은 그것을 삶아서 먹는데 달콤하고 부드러워서 매우 맛이 좋다.”, “녹미(鹿尾). 부안(扶安) 사람들이 그늘에서 말린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치고, 제주도의 것이 그 다음이다.”

     

    화초(花椒), 회향(茴香), 팥, 계피가루 등을 사슴고기와 함께 넣어서 푹 끓인 뒤 갖은양념을 넣어서 완성하는 사슴고기 국이라 할 수 있는 녹갱(鹿羹)도 별미였을 것이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화초(花椒), 회향(茴香), 팥, 계피가루 등을 사슴고기와 함께 넣어서 푹 끓인 뒤 갖은양념을 넣어서 완성하는 사슴고기 국이라 할 수 있는 녹갱(鹿羹)도 별미였을 것이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지금이야 사슴고기를 먹기가 쉽지 않지만, 예전에는 비교적 구하기가 쉬웠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웬만한 집에서는 사슴고기를 말려두곤 했다. 새해가 되면 만두소로 사용하거나 탕을 만들 때 넣는데, 드물게는 쪄서 먹기도 했다. 야생에서 사슴을 사냥하는 것이 일상적인 것은 아니라 해도 지금과 비교하면 근대 이전 시기에는 사슴을 더 쉽게 얻었을 것이다. 허균이 귀한 음식으로 취급하는 것은 사슴고기가 아니다. 사슴의 혀와 사슴의 꼬리다.
    귀한 요리로 인식되는 여러 요인 중에 희귀성은 중요한 평가 요소다. 사슴에서 얻을 수 있는 고기보다 훨씬 적은 양이 나오는 사슴의 혀와 꼬리는 귀한 식재료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허균은 여러 경로를 통해서 이런 요리를 맛보았고, 이것을 ‘도문대작’에 기록으로 남겼다.

    사슴은 한 군데도 버릴 곳 없는 최상의 식재료였다. ‘산림경제(山林經濟)’(권2)에 보면 사슴으로 즐길 수 있는 요리가 몇 가지 소개되어 있다. 엄록미(醃鹿尾)는 사슴 꼬리를 절인 것이고, 엄록포(醃鹿脯)는 사슴고기를 절여서 육포로 만든 것이며, 자녹육(炙鹿肉)은 사슴고기구이를 말한다. 사슴의 혀와 꼬리를 푹 고아서 만드는 자녹설미(煮鹿舌尾), 사슴고기를 고아서 만드는 자녹육(煮鹿肉)도 있다. 화초(花椒), 회향(茴香), 팥, 계피가루 등을 사슴고기와 함께 넣어서 푹 끓인 뒤 갖은양념을 넣어서 완성하는 사슴고기 국이라 할 수 있는 녹갱(鹿羹)도 별미였을 것이다. 이 정도면 사슴은 당시 최상의 식재료로 인정받았을 것이다.

    여기서도 사슴의 혀와 꼬리는 빠지지 않는다. 사슴 꼬리를 절여서 만드는 엄록미는 털을 깨끗이 깎아버린 사슴 꼬리를 준비하고, 그 뼈를 발라내면 가운데에 공간이 생긴다. 거기에 소금을 넣고 동전을 넣은 뒤 그 구멍에 막대기를 끼워 바람에 말리면 된다. 자녹설미는 말 그대로 사슴의 혀와 꼬리를 넣고 약한 불로 오랫동안 고아서 만드는 요리다. 영조가 즐겼다는 사슴 꼬리 요리는 아마도 사슴 꼬리 절임을 여러 가지 재료와 함께 요리한 것으로 보인다.

     

    엄록미(醃鹿尾)는 사슴 꼬리를 절인 것이고, 엄록포(醃鹿脯)는 사슴고기를 절여서 육포로 만든 것이며, 자녹육(炙鹿肉)은 사슴고기구이를 말한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엄록미(醃鹿尾)는 사슴 꼬리를 절인 것이고, 엄록포(醃鹿脯)는 사슴고기를 절여서 육포로 만든 것이며, 자녹육(炙鹿肉)은 사슴고기구이를 말한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팔진미(八珍味) 즉 여덟 가지 진귀한 요리가 있다. 문헌에 따라 거론되는 요리 종류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명나라 문인 도종의(陶宗儀)가 쓴 ‘철경록(輟耕錄)’에는 제호(醍醐), 조항(麆沆), 야타제(野駝蹄), 녹순(鹿脣), 타유미(駝乳糜), 천아적(天鵝炙), 자옥장(紫玉漿), 현옥장(玄玉漿)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팔진미는 용간(龍肝), 봉수(鳳髓), 표태(豹胎), 이미(鯉尾), 효적(鴞炙), 성순(猩脣), 웅장(熊掌), 수락(酥酪)을 꼽는다. 허균의 ‘도문대작’ 중에서 ‘비주지류’로 구분해서 거론한 요리는 대체로 팔진미에 필적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웅장과 표태가 포함되어 있고, 거위와 사슴이 들어있다. 여기서 허균은 자신의 미각이 얼마나 높은지를 은밀하게 드러내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맛있는 요리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구성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어떤 맥락에서는 사회적 신분이나 계층, 권력 관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도문대작’은 허균이 경험했던 음식을 통해서 그가 비록 귀양바치 신분으로 지금은 천하게 지내지만, 그의 문화적 토대와 사회적 혹은 정치적 권력의 중요한 단계에 있었다는 점을 보여 준다. 해당 항목의 뒤에 부기해 놓은 내용, 즉 일상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식재료들은 기록하지 않았다는 점, 특별한 것만 기록한다는 점을 표기함으로써 허균은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요리가 평범한 백성들은 쉽게 접할 수 없는 진귀한 음식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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