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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蔈古), 제주 것이 좋다. 오대산과 태백산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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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고(蔈古), 제주 것이 좋다. 오대산과 태백산에도 있다.”

    [도문대작] 44. 표고버섯에 담은 백성의 마음

    • 입력 2024.09.21 00:04
    • 기자명 김풍기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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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도문대작(屠門大嚼)'은 푸줏간 앞을 지나면서 입맛을 쩍쩍 크게 다신다는 뜻이다. 이 책은 허균의 방대한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저술된 일종의 음식 관련 저술이다. 다시 분류하자면 음식문화를 기록한 책으로 보아야 한다. 허균의 고단한 유배지 식탁은 과거 풍성한 식탁 귀퉁이조차도 구경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를 극복한 것이 바로 상상력이었다. 그런 궁핍한 현실 속에서 허균의 미각적 상상력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김풍기 교수와 함께 걸작 도문대작을 탐닉한다. <편집자 주>

    제주도에서 한동안 지낸 적이 있다. 바닷가에 집을 얻고 매일 곶자왈을 찾아다니면서 원시림 같은 숲을 걷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다가 저녁이 되면 돌아와서 바다 저편으로 지는 일몰을 즐기는 나날을 보냈다. 하루는 한라산 중산간을 가로지르는 길을 넘다가 산책하기 좋은 숲이 있다는 표지판을 보고 계획 없이 작은 길로 들어선 적이 있었다. 작은 마을을 지나서 다시 백록담이 보이는 쪽 숲길로 들어섰는데 표고버섯 농장이 보였다. 강원도 웬만한 산간 지역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표고버섯 농장이었으므로 제주도에서 만난 농장 푯말은 낯설었다.

     

    허균이 맛본 표고는 오대산과 태백산의 것이 맛있지만 역시 제주에서 생산된 것이 좋다고 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허균이 맛본 표고는 오대산과 태백산의 것이 맛있지만 역시 제주에서 생산된 것이 좋다고 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그러다가 문득 허균의 ‘도문대작’에서 표고버섯을 서술한 것이 생각났다. 허균은 이렇게 썼다. “표고(蔈古). 제주에서 나는 것이 좋다. 오대산(五臺山)과 태백산(太白山)에도 있다.”

    그가 맛본 표고는 오대산과 태백산의 것이 맛있지만 역시 제주에서 생산된 것이 좋다고 했다. 표고는 한반도 어느 지역에서나 생산되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그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착각이다. 조선 전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이라든지 조선 후기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기록된 특산물을 살펴보면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주로 발견된다. 강원도나 충청도를 비롯해 그 이북 지역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당시 제주는 전라도에서 관할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전라도 제주목(濟州牧)이었다. 제주목의 토산물(土産物)로 표고버섯을 기록하고 있다. 허균은 제주도에서 올라온 표고버섯의 맛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1757년(영조 33) 10월의 일이다. 당시 인원왕후(仁元王后)의 장례를 치를 때 제주의 백성 40여 명이 바다를 건너 한양으로 올라와 부역을 한 일이 있었다. 영조가 그들을 불러서 위로하는 자리를 만들었는데, 거기에 참석했던 제주도 사람 중 하나가 표고버섯을 바쳤다. 왕이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일찍이 ‘권민가(勸民歌)’를 보니 ‘미나리를 바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저도 이런 뜻입니다.” 백성의 행동에 감동한 왕이 그가 바친 표고를 인원왕후의 빈소에 올리도록 했을 뿐 아니라 그 당시 새로 부임하는 제주 목사가 부임 인사를 하러 오자 겨울 동안 올리는 물건을 정지하도록 하고 진휼미 6천석을 하사했다. ‘국조보감(國朝寶鑑)’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여기서 제주도 백성이 영조에게 아뢸 때 언급된 표현 ‘미나리를 바친다’는 것은 재야에 은거하는 이름 없는 백성이 늘 임금을 생각하다가, 가난한 살림살이 와중에서도 자신이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는 살진 미나리를 임금에게 올렸다는 옛날의 고사를 말하는 것이다. 표고가 비록 비싸고 귀한 것은 아니지만, 제주도 백성으로서는 자신의 생활 속에서 가장 맛있는 것을 올린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식재료였다.

    제주도의 표고와 관련해서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만 전하는 것은 아니다. 왕조실록에 제주도의 표고가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주로 표고를 공물로 바치는 폐단에 대한 논의였다. 특히 바다를 건너는 동안 표고가 흙비를 맞고 나면 쓸모가 없어지는데, 워낙 이런 일이 많아서 궁궐의 담당자 입장에서 보면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해마다 표고를 제주에 지정 물품으로 정해서 늘 받아왔는데 이 문제는 조선 후기 내내 논의의 대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가 제주도에서 사는 동안 우연히 만났던 표고버섯 농장의 낯섦은 이렇게 옛 기록과 연결되면서 현대의 시선으로 과거의 문헌을 읽을 때 나타나는 간극을 새삼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 시대 사람들은 표고버섯을 어떻게 조리해 먹었을까? 사실 버섯 종류는 워낙 많기도 하지만 식용할 수 있는 것보다는 식용하지 못하는 독버섯이 더 많아서 채취하기가 만만치 않다. 조선 전기 관료 문인인 성현(成俔, 1439~1504)의 ‘용재총화(慵齋叢話)’에는 인왕산 근처에 있는 절에서 열리는 우란분회(盂蘭盆會)에 참석했던 부녀자들이 절 뒷산 소나무숲에서 버섯을 따서 먹고 실성한 사람처럼 변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마도 환각을 일으키는 독버섯을 삶아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표고를 주재료로 삼아서 삶았다면[팽(烹)] 그것은 표고탕(蔈古湯)이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표고를 주재료로 삼아서 삶았다면[팽(烹)] 그것은 표고탕(蔈古湯)이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그렇다면 허균 시대에는 표고버섯을 어떻게 요리해서 먹었을까. 날것으로 먹을 수도 있었겠지만, 대체로 삶아서 먹었을 가능성이 크다. 앞서 언급한 용재총화의 기록에서도 부녀자들이 그 버섯을 삶아 먹었다고 했다. 다른 식재료를 곁들이기는 하겠지만 표고를 주재료로 삼아서 삶았다면[팽(烹)] 그것은 표고탕(蔈古湯)이다. 이런 방식이 널리 사용되는 한편 표고에 기름을 두르고 구워내는 표고적(蔈古炙)도 있었다. 표고는 이렇게 탕과 적으로 요리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방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표고버섯은 아니지만, 조선 전기 생육신 중의 한 분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의 시에 흥미로운 버섯 요리가 등장한다. ‘노구솥에 버섯과 채소를 넣고 끓인다(煮菌蔬於小鐺)’ (매월당집 권6)는 제목의 작품에는 아직 눈이 덜 녹은 늦겨울 이른 봄에 막 돋아난 산나물을 캐서 버섯과 함께 노구솥에 넣어서 함께 삶아 먹는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주영하 교수 등이 공저한 ‘한식문화사전’에 의하면 채소와 버섯을 함께 넣어서 데치거나 끓여 먹는 것은 조선 시대 가난한 절에서 스님들이 늘 먹던 음식이었는데 이것을 골동갱(骨董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골동은 섞는다는 의미다. 비빔밥을 골동반(骨董飯)이라고 하는 용례에서 알 수 있듯이, 골동갱은 여러 채소와 버섯을 뒤섞어서 끓여 먹는 음식이라는 의미가 분명하게 들어온다.

     

    찌개를 끓일 때도 표고 육수를 내고 고명으로 팽이버섯을 올리며, 고기를 구울 때도 석쇠 한구석에 양송이버섯을 올려서 함께 굽는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찌개를 끓일 때도 표고 육수를 내고 고명으로 팽이버섯을 올리며, 고기를 구울 때도 석쇠 한구석에 양송이버섯을 올려서 함께 굽는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요즘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버섯을 아주 좋아한다. 찌개를 끓일 때도 표고 육수를 내고 고명으로 팽이버섯을 올리며, 고기를 구울 때도 석쇠 한구석에 양송이버섯을 올려서 함께 굽는다. 제주도의 표고버섯을 주로 이야기했지만, 오대산과 태백산 자락에서 생산되는 건강하고 맛있는 표고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다는 점도 새삼 기억해야 할 일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입맛은 시대가 바뀌고 식재료 환경이 바뀌어도 꾸준히 유지되는 그 무엇인가가 있는 모양이다. 허균의 ‘도문대작’을 통해서 새삼 그런 점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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