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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가격을 알면 부동산을 사기 어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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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가격을 알면 부동산을 사기 어려운 이유

    박원갑의 부동산 투시경

    • 입력 2024.09.02 00:01
    • 수정 2024.09.06 00:17
    • 기자명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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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20년간 서울 마포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해온 김형국(가명·64)씨는 멀리서 출퇴근한다. 중개업을 해서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돈을 벌었다. 직장인이든, 사업가든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직주근접’의 매력을 느낀다. 김씨는 중개사무소가 있는 이곳에서 집을 살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옛날 가격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라고 털어놨다. 이곳에서 집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몰려올 때마다 그를 가로막는 심리적 기제가 있다. 그 옛날에는 집 시세가 얼마 하지 않았고, 그사이 경제가 크게 좋아진 것도 없는데, 지금 가격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에서 기획회사를 운영하는 강성구(가명·58)씨는 동네 아파트만 바라보면 화가 치민다. ​10년 전만 해도 강남 30평형대 아파트는 10억 원이면 살 수 있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 기회를 놓친 것이다. ​지금은 거의 3~4배 올라 엄두를 못 낸다. ​강 씨는 “강남 아파트를 살 돈이 있지만, 옛날 그 가격이 생각나고 나 자신이 미워서 사기 힘들다”고 말했다.

    누구나 집을 사려다가 기회를 놓친 경우가 있을 것이다. 어느 날 결심하고 눈여겨보던 아파트를 사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부동산중개업소에 들러보니 사려고 했던 아파트 가격이 껑충 올라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파트를 아무런 망설임 없이 매수하는 사람이 드물다.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왜 그럴까? ​합리적 인간이라면 과거 시세를 굳이 떠올리지 않고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매수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보다 감정이 앞선다. 그래서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이성은 정념의 노예에 불과하다”라고 했는지 모른다. ​자신의 잘못된 과거 판단에 대한 후회가 치밀어 오른다. ​시세는 숫자에 불과하다.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기회를 놓친 그 아파트를 보면 마음의 평정을 잃는다. ​한번 놓친 과거 시세에 자꾸 집착한다. “그때 사야 했는데, 내가 바보였어.”

    그 아파트 가격에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이라는 자신의 감정을 교차시킨다. 순간 자신의 판단에 실망감이 커지고 심하게는 자기 분노에 시달린다. 이처럼 과거 시세는 현재 시점에서도 아파트 구입 여부를 결정짓는 ‘닻 내림(anchoring)’ 역할을 한다. 새로운 가격을 받아들이지 못해 결국 그 아파트 사기를 단념한다. ​그래서인가. 집값 상승기에 그 지역 집을 먼저 사는 사람은 현지인보다 외지인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과거 시세를 잘 아는 동네 사람은 과감한 결정을 하지 못한다. 지금 시장가격을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거부할 것인가.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시장가격을 인정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시장은 나보다 똑똑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요즘 서울 아파트시장을 바라볼 땐 좀 냉정해야 할 것 같다. 바닥이었던 지난해 초부터 올 상반기까지 아파트 실거래가지수 기준 가격 상승률이 15%에 육박할 만큼 단기 급등한 때문이다. 정부가 대출 문턱 올리기 같은 수요 조절 책을 계속 내놓고 있어 숨 고르기를 할 가능성이 크다. 신고가를 경신한 최근 가격보다는 그 이전 가격, 적어도 올해 초 가격을 준거점으로 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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