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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창수의 딴생각] 누가 책을 두려워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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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창수의 딴생각] 누가 책을 두려워하는가

    • 입력 2020.10.11 08:52
    • 수정 2020.12.08 11:43
    • 기자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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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창수 소설가
    하창수 소설가

    종이를 처음 만든 사람으로 알려진 채륜(蔡倫)은 중국 후한(後漢) 사람이다. 그가 종이를 발명한 서기 105년은 우리의 삼국시대가 시작되고 대략 100~150년쯤 되었을 때다. 종이가 있기  이전에 글을 쓰려면 주로 잘 다음은 대나무나 나무, 혹은 비단을 이용했다. 하지만 비단은 너무 비쌌고, 대나무나 나무는 부피가 커서 들고 다니는 데 한계가 있었다. 채륜 이전에도 이집트의 파피루스 같은 게 있긴 했지만 글을 쓰는 용도가 아니라 주로 포장지로 쓰였다. 종이를 뜻하는 한자어 ‘지(紙)’는 비단을 만들고 남은 부스러기를 가리켰는데, 비단 부스러기는 채륜이 종이를 만들 때 활용한 재료 중의 하나였다. 기록에 의하면, 채륜은 나무껍질·삼베·그물 같은 것으로 요즘의 펄프를 합성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매끈한 형태의 종이를 만들었다.

    ‘冊(책)’이라는 한자어는 대나무로 만든 ‘죽간(竹簡)’에서 생겨났다. 고대의 중요한 문헌이나 문서는 거의 모두 이런 형태로 존재했다. 진시황이 유학자들을 산 채로 구덩이에 묻어 죽이고 유학서적들을 불에 태웠다는 분서갱유 때의 그 ‘서적’은 죽간으로 된 거였다. 진나라가 망하고 한나라가 들어선 이후 공자의 집 담벼락에서 『상서(尙書)』가 발견되는데, 당연히 죽간에 쓴 책이었다. 『상서』는 흔히 『서경(書經)』이라고 하는 유학경전이다. 이때 나온  『상서』는 공자 시대에 사용하던 고대의 글자로 쓰여 있어 ‘고문(古文) 상서’라 하고, 이를 한나라 시대의 글자로 옮겨 쓴 걸 ‘금문(今文) 상서’라 한다. 이들은 어지간히 오래된 ‘책’이어서 후대의 학자들은 물론 당시 학자들 사이에서도 진짜냐 가짜냐를 두고 논쟁이 끊이질 않았다.

    종이에 글을 쓰기 이전의 서적, 그러니까 대나무에 쓴 ‘책’을 원조로 한다면 인간이 책과 함께 한 역사는 어마어마하게 길다. 유학의 시조인 공자가 태어난 것은 기원전 551년이고, 그가 쓴 『춘추(春秋)』라는 역사서의 시점은 기원전 722년인 노나라 은공(隱公) 때이다. 그 이전에도 당연히 책은 있었다. 오지랖을 넓혀 『주역(周易)』의 근원이 되는 「하도(河圖)」·「낙서(洛書)」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중국이란 나라가 시작되던 때와 만나는데, 이쯤 되면 인류의 역사가 곧 책의 역사라 해도 과장은 아니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적어도 다섯 수레의 책은 읽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은 시성(詩聖)으로 일컬어지는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가 지은 시의 한 구절로, 관직에서 물러나 시골집에 은거하며 독서에 전념한 백학사(栢學士)의 학문과 인품을 기린 것이다. ‘다섯 수레’에 담길 정도의 책이면 얼마나 될까. 문헌을 뒤져보면, 옛날 수레의 크기는 보통, 너비가 1미터, 길이가 1.5미터 정도다. 이 정도면 한 수레에 100권쯤 담길 것이다. 다섯 수레면 500권 남짓이다. 빡빡하게 싣고 얹고 해도 1천권을 넘지 않는다. 그런데 당나라 때면 아직 활자가 만들어지기 전이라 모두 붓으로 직접 글씨를 쓴 필사본(筆寫本)인데다, 옛날 책 한 권이 대략 서른 쪽 안팎이라 지금의 책 1천 권에 비교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개인의 문집으로 가장 양이 많은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는 154권이고, 청나라 때 편찬된 세계최고의 총서인 『사고전서(四庫全書)』는 79,337권이었다.

    종이가 세상에 나오고 2천년이 지났다. 지금, 우리는, 책을 얼마나 읽을까? 2018년 8월에서 2019년 9월까지 문체부에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의 독서량은 연간 7.5권, 한 달에 채 한 권이 되지 않는다. 하루 독서시간은 31.8분. 이런 식이라면 평생 ‘다섯 수레의 책’을 읽을 확률은 0에 가깝다. 2016년 통계지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하루 3시간 이상이 40%를 넘는다. 1시간~30분쯤 본다는 사람은 10% 남짓이다. 

    조선의 정조가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조시대를 흔히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것이나 조선에서 가장 많은 저서를 가진 정약용을 정조가 무척 아꼈다는 얘기는 독서가로서의 정조를 부각시킨다. 세종 또한 엄청난 독서량을 가진 임금이었다. 송나라의 대표적 학자인 구양수(歐陽脩)와 소식(蘇軾)이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구소수간(歐蘇手簡)》을 왕자시절부터 천 번 이상을 읽었다거나, 책에 빠져 건강을 해칠 지경이 되자 부왕(태종)이 책을 모두 감추도록 했다는 일화는 세종을 ‘독서왕’이라 부를만하며, 한글 창제의 토대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지난 9일, 우리가 편하게 읽고 쓰는 언어가 만들어진 지 574돌을 맞았다. 하지만 그 언어로 씌어진 ‘책’은 하루하루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다. 그렇게 ‘책을 두려워하는 민족’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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