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바카라


도루묵. 강원도와 함경도 동해안에서 대부분 잡힌다
  • 스크롤 이동 상태바

    도루묵. 강원도와 함경도 동해안에서 대부분 잡힌다

    [도문대작] 47. 도루묵의 계절이 온다

    • 입력 2024.10.12 00:01
    • 기자명 김풍기 강원대 교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도문대작(屠門大嚼)'은 푸줏간 앞을 지나면서 입맛을 쩍쩍 크게 다신다는 뜻이다. 이 책은 허균의 방대한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저술된 일종의 음식 관련 저술이다. 다시 분류하자면 음식문화를 기록한 책으로 보아야 한다. 허균의 고단한 유배지 식탁은 과거 풍성한 식탁 귀퉁이조차도 구경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를 극복한 것이 바로 상상력이었다. 그런 궁핍한 현실 속에서 허균의 미각적 상상력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김풍기 교수와 함께 걸작 도문대작을 탐닉한다. <편집자 주>

    이맘때가 되면 나는 산책길에 인근 시장을 돌면서 도루묵이 출시되는지를 살피곤 한다. 요리에 젬병인 나로서는 도루묵이 나오는 기색만 보이면 은근히 아내에게 그 정보를 흘린다. 아내 역시 도루묵을 좋아하는지라 이때부터 밥상에 도루묵 요리가 올라온다. 주말이면 도루묵 축제를 하는 동해안으로 가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도 하고, 신선하고 값이 좋다 싶으면 한 상자씩 사 오기도 한다. 도루묵은 11월부터 다음 해 1월이면 거의 끝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몇 달 동안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생선이다.

    도루묵의 이름에 대한 전설은 워낙 널리 알려져 있다. 어느 시대인지는 모르지만, 어떤 왕이 전쟁통에 피난하러 가게 되었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느라 몸도 마음도 지쳤는데, 한 번은 밥상에 처음 보는 생선이 올라왔다. 먹어보니 너무 맛이 있었다. 이름을 물어보니 아는 사람이 없었다. 생선의 몸통이 은빛으로 하얗게 빛났으므로 왕은 그 생선에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전쟁이 끝나고 궁궐로 돌아온 왕은 자신이 먹던 은어의 맛이 그리웠다. 그래서 은어를 올리라고 해서 먹었는데 예전의 맛이 아니었다. 정말 맛이 없는 생선이었다. 그래서 다시 도로 물리라고 했다는 데에서 ‘도루묵’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이야기다.

    이 설화는 전승에 따라 약간씩 변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대체로 서사의 구조는 비슷하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설화의 주인공이 임진왜란을 당했던 선조라는 설이 널리 알려졌다. 작자 미상이기는 하지만, ‘후광세첩(厚光世牒)’에 부록으로 수록된 윤두수(尹斗壽, 1533~1601)의 연보에도 선조가 의주로 몽진을 할 때의 일화로 서술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 설은 신빙성이 없다. 왜냐하면, 임진왜란을 온몸으로 체험한 허균이 도루묵의 전설을 ‘도문대작’에서 거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서술했다. “은어(銀魚). 동해에서 난다. 처음 이름은 목어(木魚)였는데 고려 때 좋아하는 임금이 있어 은어라고 고쳤다가 많이 먹어 싫증이 나자 다시 목어라고 고쳤다 하여 환목어(還木魚)라 한다.”

    24세의 젊은 나이에 임진왜란을 겪은 허균이 이 설화를 알고 있다는 것은 이미 그 이전부터 이런 유형의 설화가 전승되고 있었다는 의미다. 허균과 같은 시기를 살면서 함께 관직 생활도 했던 이식(李植, 1584~1647)의 시에서도 이와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어떤 기록에는 고려 시대의 왕을 거론하고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선조와 연관해서 이야기할 일은 아니다.

    도루묵이라는 이름이 우리말이다 보니 한자로 표기할 때 이두식으로 할 수밖에 없다. ‘환(還)’은 원래 상태로 되돌린다는 뜻이니 우리말로 ‘도로’에 해당하는 부사어다. 그러니 ‘환목어’는 ‘도로목’ 혹은 ‘도루목’으로 읽는다. 한자의 음만 빌려서 표기하는 음차 방식으로는 19세기에 편찬된 조재삼(趙在三, 1808~1866)의 ‘송남잡지(松南雜識)’에 나오는 ‘도모록(都路木)일 것이다. 물론 조재삼은 이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을 인조가 병자호란 당시 공주로 몽진하러 갔을 때로 잡았으니 잘못된 기록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만 그의 글을 통해서 도루묵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던 생선이며 그와 관련한 다양한 설화가 전승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는 있을 것이다.

     

    도루묵은 몸통 전체가 은빛이기 때문에, 햇살이라도 비출 양이면 무지갯빛이 살짝 돌면서 아름답게 빛난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도루묵은 몸통 전체가 은빛이기 때문에, 햇살이라도 비출 양이면 무지갯빛이 살짝 돌면서 아름답게 빛난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이 생선은 몸통 전체가 은빛이기 때문에, 햇살이라도 비출 양이면 무지갯빛이 살짝 돌면서 아름답게 빛난다. 이 때문에 이 생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은빛 물고기라는 뜻으로 ‘은어(銀魚)’라고 지칭했다. 허균이 서술하는 설화에 등장하는 왕도 이 생선을 좋아할 때는 은어라고 부르고 싫증이 나면 도루묵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생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여기서 다시 언급해야 할 지점이 있다. 예전에 언급한 적이 있지만(연재 12회 글 참조), 우리가 지금 말하는 ‘은어(銀魚)’와 허균이 말하는 ‘은어’는 다른 어종이라는 점이다. 근대 이전 한문 기록에서 ‘은어’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도루묵’을 지칭하는 단어고, 한문 기록에서 ‘은구어(銀口魚)’라고 하는 단어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은어’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 점을 독자 여러분께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 이 글에서는 편의상 ‘도루묵’으로 표기를 통일하였다는 점을 알아주시기 바란다.

    도루묵은 대체로 강원도와 함경도 지역의 동해안에서 대부분 잡히는 물고기다. 강릉 지역에서는 도루묵을 도루메기라고 불렀는데 이는 현재 북한의 표준어 즉 문화어와 같은 것을 보면 이 지역이 도루묵의 주요 생산지라는 사실을 방증해 준다. 허균은 강릉을 비롯하여 동해안 지역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으니 싱싱한 도루묵을 접했을 것이다. 게다가 태관서(太官署)에 근무하면서 궁궐로 올라오는 음식을 두루 살피고 경험했으니 당연히 도루묵에 대한 기억이 많이 남아있었을 것이다. 가을이면 궁궐에서는 그해 새로 수확된 농산물로 천신(薦新)을 하는데 도루묵도 제사상에 늘 오르곤 했으니, 허균으로서는 당연히 그것을 살폈을 것이다. 여기에 근무하는 동안 쓴 시를 모아서 ‘태관고(太官藁)’를 엮었는데, 그중에 “젓가락질하는 동안 도루묵은 꿈틀거리고, 주렴 너머로는 때까치 비스듬히 난다”(鬪筯銀魚動, 穿簾練鵲斜. ‘귀가(貴家)’, ‘성소부부고’ 권2)는 구절이 나온다. 귀한 집안의 풍경을 읊었지만, 이는 궁중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귀가(貴家)의 밥상에 싱싱한 도루묵이 올라온 것을 묘사한 것이다.

     

    곧 다가올 도루묵의 계절이 기대된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곧 다가올 도루묵의 계절이 기대된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도루묵이 잡히기 시작하면 동해안 여러 지역에서는 축제가 열린다. 찌개로 먹기도 하고 구이로도 먹으며 조림으로도 먹는다. 일본에서는 삭혀서 먹는 요리도 있다. 도루묵이 귀한 시기도 있었지만 그래도 높은 어획량을 자랑하는 어종이었으므로 일반 백성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도루묵을 즐겼다. 허균이 ‘도문대작’을 쓸 때는 서해안과 이어져 있는 함열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였고, 더욱이 함열에 도착했을 때는 도루묵의 계절이 끝났을 때였으므로 그곳에서 도루묵을 먹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겨울은 역시 도루묵의 계절이었으니 그의 섬세한 미각으로 호명되지 않을 리 없다. 곧 다가올 도루묵의 계절이 기대된다.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3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