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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몰래 식판·연탄 나르며⋯13년째 온기를 전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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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몰래 식판·연탄 나르며⋯13년째 온기를 전파하다

    13년째 봉사 춘천 기계공고 김관우 교사
    학생 대입 위해 시작한 봉사, 삶의 이유로
    “난 특별한 사람 아냐⋯돕는 자체가 기쁨”
    자원봉사·후원금 급감 “이웃의 관심 절실”

    • 입력 2023.12.07 00:03
    • 수정 2023.12.15 22:17
    • 기자명 오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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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9일 김관우씨가 춘천 소양동 하늘이차려준밥상에서 배식 봉사를 하고 있다. (사진=오현경 기자)
    지난달 29일 김관우씨가 춘천 소양동 하늘이차려준밥상에서 배식 봉사를 하고 있다. (사진=오현경 기자)

    “저는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봉사는 누구나,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달 29일 오전 11시 춘천 소양동 ‘하늘이차려준밥상(하늘밥상)’은 추운 날씨에도 점심 식사를 위해 모인 어르신들로 붐볐다. 이곳은 혼자 식사를 챙기기 어려운 취약계층 어르신에게 제대로 된 한 끼를 제공하는 무료급식소다. 이날 찾아온 어르신은 80여 명. 하지만 주방에서 배식을 준비 중인 하늘밥상 관계자는 세 명에 불과해 일손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때 한 남성이 “조금만 기다리셔요”라며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 들어와 팔을 걷어붙였다. 닭튀김, 단무지 무침, 순두부 등을 식판에 차례로 담아 카트로 옮기고, 익숙한 듯 바쁜 곳을 찾아 척척 일을 도왔다. 연락도 없이 불쑥 나타난 이 봉사자는 김관우(54) 씨다. 춘천 기계공고 체육 교사인 김씨는 2013년부터 10년 넘게 춘천연탄은행 밥상공동체에 후원 및 연탄·급식 봉사를 하고 있다. 반 학생들과 함께, 청소년 단체 학생들과 함께, 때로는 가족과 함께다.

    김씨가 봉사를 시작할 때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13년 전 담임을 맡고 있던 학생들의 봉사점수를 챙겨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청소년 단체 ‘한별단’을 조직해 20명이 넘는 단원 학생들과 연탄 봉사를 시작했다. 한 가구당 200장씩 여섯 곳에 방문해 손바닥이 검게 변하도록 연탄을 나르는 일이었다. 고되다고 느낄 때쯤 한 어르신이 손녀뻘 되는 학생들의 손을 잡고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난다”며 따뜻한 차를 내주었다. 그 차를 받아 드는 학생들의 표정을 보며 어느덧 봉사에 대한 김씨의 생각도 바뀌어 있었다. “아이들이 처음엔 친구 따라서 오고, 점수 때문에 오고 했지만 한 장 두장 쌓여가는 연탄을 보면서 스스로 뿌듯해하고 진심으로 기뻐하더라고요. 시작은 점수 때문이었을지 몰라도 아이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저도 변하기 시작했어요.”
     

    김관우씨(오른쪽)가 2017년 당시 봉의고 한별단 학생들과 함께 연탄 봉사를 끝낸 뒤 모습. (사진=김관우씨 제공)
    김관우씨(오른쪽)가 2017년 당시 봉의고 한별단 학생들과 함께 연탄 봉사를 끝낸 뒤 모습. (사진=김관우씨 제공)

    봉사는 어느샌가 습관이 됐다. 김씨는 해가 지나고 새롭게 만나는 학생들과, 혹은 가족들과 함께 연탄 봉사장으로 향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하늘밥상에서 급식 봉사까지 시작했다.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가서 설거지를 하고, 배식을 도왔다. 그는 “봉사를 계속 다니다 보니 안 나가면 기분이 찝찝했어요. 몸이 간지럽달까? 쉬는 날에는 봉사 생각이 절로 나더라고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김씨 자녀들도 초등학생 때부터 주말마다 연탄 봉사에 참여했고 이제는 대학생이 됐다. 딸은 “아빠 우리 봉사 또 언제가?”라고 먼저 말을 꺼내곤 한다. 김씨는 “연탄을 짊어지고 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와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같이한다는 것 자체가 참 든든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오랜 기간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를 ‘나눌수록 얻는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매달 유니세프를 통해 후원하던 어린이가 성인이 돼 자립했을 때, 함께 봉사하던 학생을 성인이 된 후 봉사 현장에서 다시 만났을 때 더 열심히 살아가야 할 이유를 느꼈다. 그는 “제가 누군가를 돕는다는 표현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같이 어울리고 삶을 사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축복입니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봉사가 특별한 이유는 최근 이렇게 주변 이웃을 돌보는 이들이 점점 줄고 있기 때문이다. 춘천연탄은행은 최소한의 운영비조차 마련하기 어렵다. 지자체의 지원 없이 운영되는데 올해 일반인들의 후원금이 작년 이맘 때와 비교해 반 토막이 났다. 거래 중인 연탄 대리점에서 외상까지 할 정도다. 춘천연탄은행 관계자는 “요즘 경제가 어렵다 보니 후원이 크게 줄어 춘천뿐 아니라 전국 연탄은행에 비상이 걸렸다”며 “어르신들을 추위에 떨게 할 수는 없으니 우선 연탄을 받아 집으로 보내드리고, 월말에 정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춘천연탄은행의 연탄 가격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춘천연탄은행의 연탄 가격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특히 춘천에 있던 마지막 연탄공장인 ‘육림연탄’이 2020년 경영난으로 인해 폐쇄한 후에는 원거리 배송이 불가피해져 연탄 가격도 올랐다. 춘천연탄은행 관계자는 “육림연탄 폐쇄 후 경북 예천에 위치한 ‘예천연탄’에서 물건을 받아오고 있다”며 “먼 거리에서 오다 보니 기름값, 인건비 등이 추가로 붙는다”고 말했다. 연탄 1장의 판매소 가격은 2015년 391원에서 차츰 올라 현재는 657원으로 1.7배 가량 오른 상태다. 2018년 이후 판매소 가격은 동결됐지만, 거리에 따른 운송비 등을 더한 소비자가는 개당 880~900원 선이다.

    설상가상으로 봉사자 수도 줄고 있다. 행정안전부 ‘1365자원봉사포털’의 통계에 따르면 강원지역 봉사자 수는 2019년 109만 2030명에서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 77만 232명으로 대폭 줄었다. 그 이후로도 2021년 72만 1067명, 2022년 70만 5841명 등 거리두기가 해제된 이후로도 계속해서 감소하는 추세다.
     

    강원지역 봉사자 수는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강원지역 봉사자 수는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밥상은행을 찾는 어르신은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65세 이상의 고령 저소득층이다. 2023년 12월 기준 춘천시의 65세 이상 인구는 5만 8394명, 그중 기초생활수급자는 7342명에 이른다. 이 중 하늘밥상에서만 하루 100명이 넘는 어르신들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지만 봉사자가 부족해 정상적인 운영이 어렵다. 현재 밥상은행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기관이 고용한 아르바이트생 한 명과 하루 한 명꼴인 자원봉사자가 전부다. 많아 봐야 하루 3~4명이 재료 준비, 조리, 배식, 설거지, 청소, 도시락 배달 등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김씨와 같은 봉사자 1명의 역할이 말 그대로 결정적이다.

    춘천연탄은행 밥상공동체 정해창 대표는 “취약계층 어르신들을 보살피기 위해 항상 할 일이 많아서 봉사자들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라며 “작은 나눔을 실천해 만들어지는 연탄 한 장, 따뜻한 밥 한 끼가 우리 주변 이웃에게 생명의 온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현경 기자 [email protected]]

    [확인=한상혁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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